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한귀은 지음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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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는 늘 과잉이거나 결핍이다. 과잉이면 허영이 되고, 결핍이면 자기협오가 된다. 그 어떤 경우이거나 잉여다. 그러니 거울을 본다는 것은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잉여를 본다는 의미다. (45쪽)

모녀가 슬픔을 함께한다는 것은 각자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같이 산다는 의미다. (67쪽)

여자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남자를 사랑하고 믿기 때문에 잠시 눈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는, 사랑 자체가 지속되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늘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72쪽)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나`와 `현실의 나`사이의 소통이
끊어지면서 생긴다. (93쪽)

어른이 되어 회상해 보면 우리의 소녀 시절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소녀 시절에 이미 지금의 우리를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했기 때문에 더 꿈꿀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더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165쪽)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은 슬픔이라고 했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진을 보면서 애상에 젖는 것은 사진이 바로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슬픈 사진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찍은 것이다. (202쪽)

강한 남자란 근육으로 온몸을 갑옷처럼 싸서 내면이 전혀 가늠되지 않는 남자가 아니라, 약간 피로한 듯한 근육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내면의 고뇌가 엿보이는 남자다. 근육과 피로가 만든 음영이 이 남자를 강하고 지적인 남자로 보이게 한다. (231쪽)

중년이 바라는 노년의 삶은 이런 것이다. 부부가 마주 앉아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것. 남자는 책을 읽고, 여자는 뜨개질을 한다. 집 안은 정돈되어 있고 마당에선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일을 하다가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가 같이 낮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269쪽)

하지만 나는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많이 알고 있다. 아이 때문에, 양육비 때문에, 위자료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번거로워서 그냥 사는 것이다. 내가 이 웬수 때문에 이런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것이 설령 이혼이라도 웬수 같은 배우자와 함께 하기엔 너무 귀찮은 것이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데,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데, 굳이 이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혼하지 않고 살 때의 불행은 충분히 가늠된다. 하지만 이혼했을 때의 불행은 예측할 수가 없다. 많은 부부들은 예측 불가능한 불행보다는 예측 가능한 불행을 택한다. 예측 가능하다면 극복도 쉬울 것이다. 그러다가 혹여, 나중에 죽을 때쯤 돼서는 "당신에게 미안해"하면서 마른 손을 부어잡고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289쪽)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라모가 사람 사이 소통에서의 비극은 말에 대한 오해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이해 못할 때 시작된다고 했다. 상대의 침묵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과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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