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하는 부엌 - 삶의 허기를 채우는 평범한 식탁 위 따뜻한 심리학
고명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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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 인생이 모 아니면 도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모와 도 사이에는 둘을 이어줄 개와 걸, 윷이 필요하고 흑과 백 사이에는 다양한 색들이 존재한다. 슬픔과 기쁨은 분열되어 대치 상태에 놓인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극단적 슬픔에 빠졌을 때는 훌훌 털고 일어날 힘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감정이 필요하다. 주체하기 힘들 만큼 기쁠 때도 자칫 판단력을 잃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추스르고 누그러뜨릴 수 있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25쪽)

우리는 나의 선택이 스스로의 이성과 의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무의식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행위다. 어떻게든 그때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선택을 아쉬워하는 후회는 감정 소모에 지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후회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두 배로 불행하고 두 배로 무능하다"라고 말했다. (108쪽)

삶은 수많은 변수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을 변칙이 아닌 지극히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풀어내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임을 깨우친 것은 나이 들어가며 얻은 큰 수확이다. (126쪽)

그럼에도 과거와 미래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삶의 연장선에서 너무도 중요한 시간이다. 나는 과거에 엄마의 집밥을 먹으며 성장했고, 앞으로 남은 깃털처럼 많은 날 동안 수많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것은 이 순간 내 입과 혀로 온전히 느끼며 경험하는 현재의 음식이다. 그렇기에 매 순간 정성 들여 차린 밥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187쪽)

"나는 언제쯤이면 이 모든 것을 초탈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생각지 못한 일을 겪고 나니 별일 없이 무탈하게 반복되는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고 행복한 그 일상에 파묻혀 한껏 즐기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완전히 고유한 ‘나다움‘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초탈의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계시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선을 긋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또는 삶‘이라 거부하던 모든 것들과 마주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서서히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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