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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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그것을 지시하는 이름 사이에는 심연 같은 게 놓여 있다. 이름들 속에서 사물의 근원적 기원을 찾는 일은 아득하다. 이름은 실재가 없는 시랮요. 사건이 없는 실존-사건이니까. (19쪽)

"술빵 냄새의 시간"이란 술빵이 부풀고 익어가는 시간이다. 술빵이 숙성하듯이 사람도 성숙해진다. 숙성이나 성숙에는 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03쪽)

봄이 해마다 축복처럼 돌아오는 세상에서 끔찍한 불행과 고통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너의 절망을 말해보렴. 내 절망도 말할 테니. 패악과 부조리가 전횡하는 세상이라도 꺽이지 말고 꿋꿋하게 살자. (중략) 더 이상 착해지지 말자. 더 이상 무릎을 끓거나 기어 다니지도 말자. (133쪽)

사람은 늙고 죽는다. 죽은 이에게 남은 것은 뼈의 슬하. 물렁한 살의 슬하뿐이다. 끔찍해라. 그 슬하에 꿈틀거리는 거리는 것은 "구더기"들이다! 그 구더기들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177쪽)

우애와 우정이 있던 그 시절. 시간은 기쁨으로 가득 찬 윤무와 같았다. 예전보다 더 많이 가졌지만 지금은 더 가난하고, 더 높은 직책을 가졌지만 기쁨이나 보람은 줄었다. 양친 다 떠나시고 형제자매들도 다 흩어졌으니,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아예 글러버린 것이겠지? (197쪽)

한번 난 것은 받드시 죽는다. 죽음이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찰나들이 빛난다. (중략) 죽음이 별것인가? 모인 기가 마침내 흩어지는 게 죽음이다. 그때 우리 안의 구름, 바람, 물도 다시 제자리로. 제 모습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계급, 존비, 대소 따위가 아니다. 사는 동안 ‘활짝 열린 존재‘로 얼나나 열심히 사는가가 중요하다. (219쪽)

‘밀당‘을 하고, ‘썸‘타는 것. 인맥을 ‘어장‘이라 하고, 그것을 ‘관리‘한다고 표현하는 따위가 다 그렇다. 인간관계를 전략으로 보고 거내 든 야트막한 수작들이다. 겉치레와 허장성세로 짜인 관계들 위에 세워졌다면 그 삶은 진짜가 아니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제 것을 아낌없이 주며 환대하고, 받을 때도 벼랑에서 목숨받듯 한다. 전율이 전류처럼 찌릿하게 흐른다. 그게 진짜다.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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