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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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인간. 들판에 피어오르는 연기. 숲 길에 흩어져 잇는 비둘기의 깃털. 벼락부자가 되어 자동차에 앉아 있는 여인의 가녀린 좁은 어개. 줄타기 묘기에서 세 차례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먼지 낀 서류에 뭔가 기록하고 있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만월 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몇 구절 시구.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뒤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꽃피는 나뭇가지로 떨어지는 눈발......
이 모든 것은 우리들 가슴에 스며들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15쪽)

아, 세월 안에는 얼마나 유사한 반복이 자리 잡고 있는가. 이렇게 뇌우가 몰아치는 날, 땅거미 지는 어스름 속에 나 역시 똑같이 여기 서 있다. (62쪽)

이 어린 시절의 모험 위로 끝없는 세월이 흘러, 모래가 해변의 조개를 뒤덮듯이 다른 체험이 그것을 뒤덮었다. (79쪽)

그들과 맺은 우정이 이후의 내 인생에까지 살아 이어진 친구는 내게 한 사람도 없었다. 학창 시절이 흘러간 뒤의 인생 행로에서 나는 아무와도 재회를 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친구가 피의 구름 속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111-112쪽)

건초의 향내 속에서, 이미 죽음에 의해 베어지고 망각의 세계에 묻혀버린 그 옛날의 풀을 베던 무리들의 아물아물 떠오른다. (중략) 콧마루를 벌름거리며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마른 풀의 아물거리는 향내를 함북 들이마실 때면, 그들 모두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서 되살아 움직인다. (125쪽)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내면의 긴장상태를 위해 무엇이든 행동을 하지 앟으면 안 되는 걸까? 어떤 무의미한 행동,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이 억제할 수 없는 힘에 맞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가? 언제나 하찮은 것, 엉터리 같은 것, 어린애 장난 같은 것뿐이었어...... (154-152쪽)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울림. 태초로부터 설레어온 숲의 음성. 땅 위에 한 점의 바람결조차 느겨지지 않는 경우에도. 수관을 흘러가며 말을 건네오는 그런 숲의 살랑거림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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