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계속 말했다. 도대체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은, 아주 사소한 장면들을 자꾸만 끄집어냈다. 기억 속 어딘가에 모든 순간을 빈틈없이 반듯하게 적어놓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언제든 페이지를 펼치면 그때의 일이 눈에 보일 듯 기록되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낡지도 닳지도 않는 책. 뭐 하러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있나. 그러다가도 한 번씩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좋은 것을 좋은 대로 두는 릴.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두는 일. 망치거나 훼손하지 않고 간직하는 일. 시간을 거슬러 가서 그 모든 일을 없던 것처럼 무너뜨리지 않는 일. 나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었다.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세간의 말들을 무시하고 좋았던 순간들만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네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119-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