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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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ffer not the witch to live.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

- 킹 제임스 성경, 출애굽기 22장 18절.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 우리말 성경, 출애굽기 22장 18절.


 몇 년 전, '타블로의 스탠퍼드 대학교 학력 위조 논란'1이 있었지요. '마녀 사냥'2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마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무섭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현대적 '마녀 사냥'이 담긴 이야기가 있네요. '안개 속 소녀'라는 이야기예요. 범죄의 공포를 이용한 사업! 언론과 대중의 횡포! 그 안개가 마을에서 사라진 소녀 이야기를 감싸고 있어요.


 성탄전야. 한 소녀가 사라져요. 독실한 신앙을 가진 가정의 10대 소녀, 애나 루예요. 알프스의 고요한 산골마을에서 사라진 소녀. 유명한 형사 포겔이 이 사건을 맡게 되지요. 그는 과거에 증거 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았었는데요. 이 사건으로 재기하려고 하지요.


 '대중은 이미 애나 루를 잊어버렸다.
 이 모든 이야기의 말없는 여주인공은 벌써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여주인공의 침묵은 온갖 엑스트라들이 신나게 떠들고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짤막한 삶에 대해 아무렇게나 지껄일 구실만 제공해주었다. 언론이 하는 일이 그랬다.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슈퍼마켓에서, 그리고 바에 모여 앉은 대다수의 소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 사람들이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말이 있다. 범죄는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다는 사실. 제대로 된 스토리로 엮은 범죄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각종 스폰서와 광고를 몰아오는 법이다. 작은 마을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나 미궁에 빠진 실종사건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미디어에 노출되는 기간 동안 그 지역을 찾는 외지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는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범죄사건 하나가 다른 모든 것들을 제치고 최고의 흥밋거리로 부각되는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규명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 85~86쪽.

 '"경찰 수사가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아십니까?" 포겔은 침묵을 지키다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범인 체포'라고 응답했습니다. 극소수만이 경찰 수사의 목적은 '진실 규명'이라 답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형사님은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왜냐하면 범인을 체포해야 우리가 조금은 더 안전하다고 그나마 '착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지고 보면 대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범답안은 따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도 사건에 연루가 되고 공범이 되기 때문이지요. 언론과 대중,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범죄자를 인간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범죄자들을 무슨 외계종족이나 남을 해하고 악을 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런 범죄자들을……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힘주어 말했다. "그 대단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창의성도 부족하고 다수의 틀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개 개인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범죄자들이 우리 자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 129쪽.


 '"제가 해야 할 일은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습니다." […] "우리 모두에겐 괴물이 필요했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느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 "전 그런 사람들이 원하는 먹잇감을 던져줬을 뿐입니다."' - 132~133쪽.


 범죄의 공포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 범죄가 있는 곳에 돈이 있다고 하네요. 언론에 노출되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게 된다고 해요. 그리고 언론과 대중의 횡포! 사람들은 범죄자를 괴물로 만든다고 해요. 그래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하고요. 포겔은 로리스 마티니를 지목하여 사람들과 함께 그를 괴물로 만들지요.

 

 '희생자들도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

 희생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에 관한 진술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 부분은 수사 초기부터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희생자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그들의 과거가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단지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주면 될 뿐이다.' - 244쪽.


 희생자들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요. 범죄자와 희생자! 그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안 돼요. 희생자도 기억해야 해요. 균형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안개 속 소녀'에서 말하는 건 범죄의 공포를 이용한 사업, 그리고 언론과 대중의 횡포예요. 사업과 횡포는 '마녀 사냥'을 이루는 요소지요. 그런데, '마녀 사냥'의 출발은 호기심이에요. 타블로가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힙합가수로 활동한다는 사실이 누리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그리고 호기심이 어긋나면, 두려움으로 자라고, 광기를 품게 되지요. 타블로라는 존재에서 자신은 그와 다르고 그처럼 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것이 커져서 타블로가 분노, 증오, 타도의 대상이 된 것이에요. 그 광기를 이용해서 사업과 횡포를 이끌었고요. 즉, 언론은 의혹들의 자극적인 부분들만 보도해서 클릭수가 많아질수록 광고 수익이 많아지는 사업을 했어요. 또, 많은 사람들은 타블로를 학력 위조한 괴물로 만들었고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깊은 아픔을 남기게 된 거예요. 그 아픈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야겠어요.


 저는 도나토 카리시의 글은 처음이에요. '속삭이는 자', '이름 없는 자', '영혼의 심판'도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제게 다가온 그의 첫인상이 좋네요. 범죄학자라는 그. 범죄를 생각하게 하는 그의 질문! 또, 두려움! 작가의 마지막 가속에 전율했어요. '마녀 사냥'이라는 안개가 소녀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이 책! 띠지의 문구처럼 '고요한 산골마을에서 일어난 가장 현대적이고 교활한 범죄 서커스'예요. 그 서커스 구경! 잘했어요.






흑림귀인단 2기로서 읽고 씁니다. 


  


 

  1. https://ko.wikipedia.org/wiki/%ED%83%80%EB%B8%94%EB%A1%9C%EC%9D%98_%EC%8A%A4%ED%83%A0%ED%8D%BC%EB%93%9C_%EB%8C%80%ED%95%99%EA%B5%90_%ED%95%99%EB%A0%A5_%EC%9C%84%EC%A1%B0_%EB%85%BC%EB%9E%80
  2.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85%80%EC%82%AC%EB%83%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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