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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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고, 김홍도는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를 그렸다. 번잡한 곳을 떠나 한적함을 찾아오는 귀환자. 전원생활의 운치(韻致)를 아는 이들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도 거닐던 이상향. 예부터 집착에서 벗어난 은사(隱士)와 탐욕을 버린 수도사(修道士)가 그토록 꿈꾸던 낙원. 은둔의 즐거움이 흐르는 무릉도원, 유유자적의 기쁨이 넘치는 에덴동산. 그곳이 어렴풋이 보일 터였다.

추리 소설, 《I의 비극》에서도 이런 희망찬 계획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른바 I턴(출신지와는 다른 지역, 특히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이주를 뜻한다-옮긴이) 프로젝트.

난하카마 시는 9년 전에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 인구 6만 명이 넘는 시가 되었다(17쪽). 넓은 지역에 인구는 적은 것이다. 이 변방 중에서도 오지인 미노이시는 6년 전부터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다. 그런데, 시장은 이곳을 되살리고자 한다. 그래서 시작된 사업. 집주인과 빈집 임대 협상을 하고, 그 집을 이주 희망자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 거기에 새로운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원하는 것(19쪽). 이것이 소생과의 업무다. 직원은 단 세 명. '나 귀찮아요'를 실천하는 듯한 과장 니시노. '나 몰라요'를 실행하는 듯한 신입 간잔. '나 해낼 거예요'를 수행하며, 고군분투하는 나, 만간지. 이렇게다. 어느덧 시범 사례로 선정된 12가구는 이주를 시작하고.

'가이다초는 이미 죽었어.' -291쪽.

'예산!' -402쪽.

만간지의 남동생은 말한다. 가이다초 즉, 부모님의 식당이 있었고 지금은 난하카마 시가 되어버린 고향(291쪽)은 이미 죽었다고. 세금만 삼키는 깊은 늪(292쪽)이라고.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 떠올랐다. 항산이 있어야 한다. 난하카마 시는 그러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그곳은 종속적이게 된다. 서러운 눈칫밥을 조급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항심이 사라진 곳은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가올 수 없는 곳이 된다.

'"경제적 합리성이 사람에게 봉사해야 하는 거야."' -294쪽.

만간지가 남동생에게 한 말이다. 경제적 합리성보다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또, 이주한 사람들을 떠나게 한 이들 앞에서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한다. '그들은 시민이고, 인간이며, 모두 각자의 희망을 품고 이 마을에 왔다(401쪽)'고. 맹자의 '인자애인(仁者愛人)(마음이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공무원인 만간지는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행정은 국민을 경애(敬愛)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숫자로만 표기되는 것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다. 지극히 소중하다. 이를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만전지책(萬全之策).

실패의 위험이 없는 아주 안전하고 완전한 계책.

I턴 프로젝트는 전시 행정(展示 行政)이었다. 뜻은 좋았지만, 효용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보여주기식이었다. 의료 시설, 교육 시설 등. 지역 기반 시설이 부족했다. 산사태 예방, 제설 등. 재해 방지의 여력도 없었다. 항산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주민을 위한 마땅한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그렇게 경제성도 없었고, 인간성도 없었다. 만간지의 분투는 물거품이 됐다. 《I의 비극》이라는 이름에서 I는 'I턴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라, 화자인 만간지의 '나'이기도 했다. 지방의 전시 행정은 중앙 예산과 지방 정치인의 타협으로 낳은 소산이었을 뿐이다. 이에 안에서 반작용이 계속 일어났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숨은 힘이 되었다. 그곳은 무릉도원처럼 다시 찾을 수 없는 곳이 되었고, 에덴동산처럼 추방당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또다시 아무도 없는 곳이 된 것이다. 만전지책이 아쉬워진다.

작가도 6장 '흰 불상'의 낡은 일기장에서 말한다. 석유난로의 보급으로 사람들이 이제 장작을 쓰지 않게 된 것을. 즉, 임업이 주산업인 미노이시의 몰락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고. 작가는 한 이주자의 입을 통해 또 말한다. 불상을 함부로 움직이기는 게 아니라고. 그 속뜻은 사람들을 마구 이주시킨다고 일이 잘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올 용의주도한 계획을 희망하면서.

이 소설은 장편소설이지만, 연작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나누어진 각각의 장을 서장과 종장이 앞뒤에서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더욱이 종장에서는 모든 수수께끼를 소상히 밝힌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 추리 소설에 사회파 추리 소설을 살그머니 가미했다. 지방 소멸이라는 사회 문제를 바탕으로 억척 공무원 만간지의 일상이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그다지 어둡지 않다. 도리어 대체로 밝다. 만간지가 남동생과 통화할 때만 살짝 다를 뿐이다. 그의 일상은 슬쩍슬쩍 익살이 숨어 있는 노력 생활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소생과가 담당한 미노이시에 불의(不意)의 사건, 사고가 연속으로 일어난다. 그렇지만, 선혈이 낭자(狼藉)하는 등의 흉악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복잡한 수수께끼도 아니다. 오히려 다소 희석(稀釋)된 블랙 코미디 같은 일이 등장한다. 범죄 안전 장치가 있는 것 같이. 게다가 용서는 없지만, 체포되는 사람도 없다. 벌(罰)은 마을에서 조용히 나가는 것뿐이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뒤에서 획책(劃策)한 이들. 그들이 뿌린 씨앗도 변수가 많았을 텐데, 더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기하다. 미노이시는 범죄를 자정(自淨)하는 낙원이었던 것인가. 웃음 안에 씁쓸함이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간결한 필치로 그의 미학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각 장에서 핵심을 정교하게 설계, 실현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 그렇게 단순함을 극한으로 형상화했다. 그것이 이어져 인간 군상의 다양함이 그의 재치와 함께 구체화되었고. 결국, 어려운 주제에 도전하여, 고언(苦言)을 그만의 색채로 부드럽게 그려 내었다. 만족스럽다. 이 느낌은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일본에서 2019년에 출간된 작품이라고 한다.

둘. 2019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4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셋. 책의 제목인 《I의 비극》은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패러디한 듯하다. 또, 마지막 문장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그렇게 한 듯하다.

넷. 그의 작품 중 사회파 추리 소설의 색채를 품고 있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것을 담고 있지만, 짙은 색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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