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여름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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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몹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전쟁의 이런 얼굴을 본 사람들은 어쩌면 평생 그 얼굴을 잊지 못하리라. 그 자신도 일그러지면서. 그렇게 전쟁이 끝나도 그 상흔은 남는 것이다. 끔찍하게. 그렇다고 전쟁의 기억을 모두 부정해야 할까?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참상이 다시 사람들을 짓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설, 《무죄의 여름》은 전쟁을 기억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나고서도 감시하는 인간이 달라졌을 뿐 체제가 하는 짓은 똑같다.' -58쪽.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패전국으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분할 통지를 받고 있었다. 1945년 7월 독일 베를린. 분할 통치를 받던 베를린의 소련 관할 지구에서 크리스토프 로렌츠라는 사람이 죽는다. 치약에 묻은 청산가리 때문에. 미국 병사식당에서 일하던 열일곱 살의 소녀 아우구스테 니켈. 미국 헌병에 연행되어 소련 경찰서에 간다. 죽은 크리스토프는 첼로 연주자였고, 그의 아내 프레데리카는 부유했다. 한때 아우구스테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던 부부. 2년쯤 전 그 저택을 나왔던 아우구스테. 그녀의 혐의는 풀리지만, 프레데리카의 조카인 에리히 포르스트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살인 용의자이고, 반란분자인 베어볼프일 수도 있다며. 그렇게 배우 출신 도둑인 카프카와 함께 여정을 나선 아우구스테.

'그런 비참한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때 덮친 적국 병사의 라이플을 빼앗아 정신없이 그의 목을 쏘았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한창 시가전이 벌어지던 때 일어난 일이고, 그는 그 짓을 하는 내내 내 턱 밑에 칼을 들이댔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해당했지도 모른다. 실제로 강간당한 끝에 목숨까지 잃은 처참한 여자 시체를 보았다. 우리는 적이었다. 전쟁이었다.' -33쪽.

'이 증오를 어떻게 잊을까.' -534쪽.

유대인을 도우려던 아버지 데틀레프는 반사회분자라며 밀고되어 사형당했다. 비밀경찰의 마수가 다가와 끌려가게 되자 어미니 마리아는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 엄마와 함께 끌려온 맹인 여자아이, 이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그 아이를 여동생처럼 아낀 아우구스테였다. 그런데, 이다마저도 죽음을 맞이했다. 마지막에는 지하 방공호에 숨어 있던 아우구스테도 결국 끔찍한 일을 겪었고. 전쟁으로 너무나 큰 불행을 겪은 아우구스테. 그녀는 에리히를 찾으러 떠난 이틀 동안의 여정 속에서도 다른 이들의 여러 불행을 보기도 한다. 불행이 혐오가 된 이도 있고.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며 죽고 삶의 바탕이고 존속과 멸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손자병법 시계편(始計篇)' 중에서.

전쟁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될 수 있으면 안 해야 한다. 손자 할아버지는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며, 죽고 삶의 바탕이고 존속과 멸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졌을 때, 전쟁은 큰 상처를 준다. 이기더라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살피고 살펴야 한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침략국이었다. 학살도 했다. 그리고 졌다. 그렇게 전쟁은 많은 비극을 낳았다. 그리고 전쟁의 얼굴을 닮은 일그러진 괴물이 되는 이들도 있었다.

책, 《무죄의 여름》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참함을 한 소녀의 목소리로 담담히 담아내었다. 아우구스테라는 독일 소녀. 그녀의 긴 서사는 잔잔하지만, 무거웠다. 힘들게 읽힌다. 그렇지만, 마지막 한방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전쟁의 아픈 기억을 묵묵히 선명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작가의 말을 보면, 일본이 독일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임을 기억하라는 뜻을 글에 담았다고 한다.

둘. 이 소설은 제160회 나오키상 후보, 2018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3위, 201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 트위터 문학상 1위에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셋.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2022년 4월 12일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곳에 어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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