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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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고는 한다. 그 억울함의 크기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성장통(成長痛)처럼 겪는다. 억울함의 아픔. 일반적으로 우리를 자라고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억울함으로 인한 그 아픔이 너무 크고 깊다면, 우리를 삼키고 추락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화인(火印)처럼 남기도 하고. 그렇게 남은 아픔은 피눈물의 분노로 이어지기도 쉽다. 그래서 결국에는 비극의 복수를 낳으며 마무리되는 억울함의 아픔도 많고.

추리 소설 속의 한 남자. 살인자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억울하다는 그. 소설 《기만의 살의》는 그의 슬픈 분노로 외친 목소리다. 그는 어쩌다가 그런 애통한 노래를 하게 되었을까? 또, 마침내 어떤 결말을 지을까?







'자 이쯤에서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죄가 없습니다.' -76쪽.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한 남자. 니게 하루시게. 명문 니게 가문의 데릴사위로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아내 사와코와 조카이자 양자인 요시오를 독살한 범인으로 지목된다. 장인이자 선대 당주인 니레 이이치로의 오칠일에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정황과 증거가 그를 살인범으로 몰았다. 흠집이 난 커피잔에 든 아비산. 아비산이 든 초콜릿. 부엌에 간 적이 있는 그. 그의 재킷에서 나온 은박지 조각. 게다가 그가 어느 여인과 찍은 의심스러운 사진도 나왔다. 사면초가였다. 그때가 1966년. 그는 사형을 피하고자 범행을 자백하고야 말았다. 무기 징역이 확정된 그. 2008년에야 가석방이 되어 나오게 된다. 40년이 넘게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나온 후, 홀로 니게 저택을 지키는 처제 도코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은 죄가 없다며.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데.


'이 모든 악의 근원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 것에 있다.' -244쪽.


'증오는 가라앉은 노여움이다.' -마르쿠스 키케로.


그는 억울했다. 그럴 만했다. 죄도 없이 하루아침에 두 명을 독살한 범인이 됐으니. 그것도 아내와 양자를 죽인 파렴치범으로. 그렇게 철저히 어둠에 삼켜지고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됐다. 잔인한 살인자로 낙인이 찍혔다. 누군가의 교묘한 속임수로 그렇게 파멸된 그. 감옥에서 그의 노여움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그는 범인의 정체와 기만의 수법에 대해 골몰하게 된다. 드디어 이 모든 악의 근원은 그가 누군가와 서로 사랑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그렇게 키케로 할아버지의 말처럼, 가라앉는 노여움은 그에게 증오가 되면서.

손자 할아버지는 손자병법에서 전쟁은 속임수라 했다. 그렇다. 전략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속임수를 기반으로 한다. 전쟁은 시작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기에. 이렇듯 속임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결에서 보이는 규칙 안의 기만. 추리 소설과 마술은 그 전형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거기에도 전략이 있다. 그 창작자들은 독자, 관객을 속이고, 속은 그들은 놀라며 즐거워한다. 속았는데, 진심으로 웃는다. 약이 되는 좋은 기만이다. 소설 《기만의 살의》도 그렇다. 공정한 단서와 치밀한 복선. 그 위에 지어진 착한 속임수. 튼튼하고 꼼꼼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속임수는 기쁨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에서 말하는 기만 안에 담긴 살의를 완전히 꿰뚫을 수 있었다. 이런 벅찬 환희의 속임수는 언제나 환영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소설의 작가인 미키 아키코는 변호사 은퇴 후 집필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라고 한다.

둘. 이 소설은 2021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였다고 한다.

셋. 초판 1쇄 기준으로 348쪽의 '도쿄'를 '도코'로 바꿔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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