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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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세월에 물든다. 시간의 흔적이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든 흔적에 기억이 깃든다. 책과 그 책을 만난 이의 기억. 책과 인연이 있어 만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쌓은 기억. 또, 그렇게 앞으로 쌓을 기억.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그런 책의 시간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상심의 울음을 짓고 만다. 귀한 인연의 끈이 끊어지려 하는 그 순간. 그 인연의 끈을 잡고 다시 잇고 싶지만, 쉽지 않다. 특별하지만, 아픈 책을 만난다는 것. 그래서 그 책과 대화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것. 큰 슬픔이다. 결국, 아픔이 옮아오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이가 있다고 한다. 책 수선가라 호칭되는 이. 아픈 책을 치료하는 이다. 그 치료의 기록이 담긴 책을 감사한 인연이 있어 만나게 되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라는 책. 이 책과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살아남는 책' 중에서. (22쪽). 


'그 책에 소중한 추억이 있다면 다시 오랫동안 튼튼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특별한 감흥이 없다면 책 수선을 통해 새로운 추억이 시작될 수 있도록, 

재영 책수선은 언제나 망가진 책들을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연히 만나 운명이 되는 책' 중에서. (266쪽). 


책도 수선한다. 그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록을 보니, 대부분 책과 사연이 있는 이들이 책 수선가를 찾는다. 추억을 지키기 위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추억을 나누기 위해.

어렸을 적 친구 같았던 국어사전, 사랑의 흔적이 가득한 동화책, 선물받았다가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스물여섯 살 성경책, 어머니의 유품으로 어머니를 닮은 도안집, 수집가가 어렵게 구한 희귀한 잡지, 할머니의 정갈한 언어로 기록한 일기장, 할아버지께서 하나하나 정성으로 쓰신 천자문, 33년 된 사랑의 결혼 앨범, 힘들게 수집한 절판된 전집, 참된 친구와 함께한 여행 일지 등. 그리고 책뿐만이 아니다. 책갈피, 액자 등도 있다. 물론, 종이 재질로 된 것들이다.

이렇게 책이 가진 기억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추억이 되어, 우리에게 속삭인다. 징검다리가 되어 나에게, 또 다른 이에게 추억을 이어주기도 한다.


'책은 힘이고 용기이며, 동력이자 사유의 횃불이고 사랑의 샘.' -루벤 다리오.


책, 사물이지만, 사물 그 이상이다. 즉, 책이 대화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저 미완성일 뿐이다. 그때는 단순 사물인 것이다. 운명의 영혼과 인연이 되어,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비로서 완성된 책이 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책이 사물이지만, 사물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시인 루벤 다리오의 말처럼, 힘이고 용기이며, 동력이자 사유의 횃불이고 사랑의 샘인 되는 것이다. 그렇다. 책은 양가적(兩價的)이다. 어쩔 수 없이 마침내 병에 걸리거나 다치게 되는 책. 아끼는 책의 아픔! 비애가 솟아날 수밖에 없다.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이해하고, 그 책의 기억을 관찰하며,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하는 책 수선가. 아픈 책들의 수호자로서 치유의 손길을 베푸는 그녀. 그녀에게는 책에 아로새겨진 기억을 기꺼이 나누어도 된다. 언제나 아픈 책에게 환영의 인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녀이기에.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이 빛나는 책 수선가의 책에서도 그 사랑스런 얼굴이 그려진다. 그런 그녀가 남긴 이 기록. 꼼꼼하고, 사려 깊다. 그러니, 대화가 싱그럽다. 이 책, 사물 그 이상이다. 힘, 용기, 동력, 사유의 횃불, 사랑의 샘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책에는 리디셀렉트에 2020년 9월에서 2021년 5월 사이에 연재했던 글 스물한 편과 새로 쓴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둘. 저자가 말하길 테이프는 종이의 적이라고 한다. 장갑도 책에게 망령이라고 하고.

셋. 초판 1쇄 기준으로 233쪽의 '학업과책'을 '학업과 책'으로 고쳐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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