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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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서평을 졸문(文)이라고 했다. 내가 댓글로 누군가에게. 반은 겸손으로. 반은 진심으로. 다음 댓글로 부연 설명을 했다. 내 글을 보면, 자꾸 고치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귀찮아서 안 한다고. 그렇게 급하게 쓴 글이 너무 많다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막막한데, 급하게 써야 한다. 나도 시선(詩仙) 이백(李白) 할아버지처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도 명문(名文)이고 싶다. 아니면, 시성(詩聖) 두보(杜甫) 할아버지처럼, 부지런히 퇴고(推敲)를 거듭하면서 뛰어난 글을 짓고 싶다. 개성이 다른 두 시인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리라. 아마 이백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퇴고를 하고 시를 썼으리라. 난 그냥 쓰면, 많이 부족한 글이고, 고치면 조금 나아지지만, 여전히 부족한 글이다. 게다가 퇴고의 연속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귀찮다는 핑계로 내 글은 대부분 첫 번째 원고인데, 간혹 두 번째 원고도 있다. 그러니, 부끄러운 글이다.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네 번째 원고' 중에서. (257쪽)


 책이 많아 작가라는 오해를 가끔 받지만, 절대 작가가 아닌 나. 그저 졸문 전문가. 그런데, 위의 글을 보면, 영락없이 나는 작가다. 작가들도 나와 같은가 보다. 단, 첫 번째 원고에서만. 논픽션의 대가라는 할아버지의 글이니, 옳으리라.


 '보통의 작가와 무대 위의 즉흥 연주자(아니 모든 공연 예술가)가 다른 점은, 글을 수정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은 수정이야말로 집필 과정의 본질이다. 단 한 줄도 북북 그어서 지우지 않는 완벽한 작가의 눈부신 초상이란 환상의 나라에서 온 속달우편일 뿐이다.' -'네 번째 원고' 중에서. (260쪽) 


 수정. 그것이야말로 집필 과정의 본질이다라는 글이 와닿는다. '네 번째 원고'라는 이름이 책에 붙은 이유겠지. 1931년에 태어나신 미국 할아버지도 퇴고의 중요성을 잘 아는구나. 전설의 저술가라더니, 역시.


 '"강하고 견실하고 교묘한 구조,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구조를 세워라. 논픽션의 설득력 있는 구조는 픽션의 스토리라인과 유사하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구조' 중에서. (62쪽)


 '독자들이 구조를 눈치채게끔 해선 안 된다. 구조는 사람의 외양을 보고 그의 골격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만 눈에 보여야 한다. ...... 한 편의 글은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어딘가로 가서, 도달한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어떻게 이 일을 할까? 반박의 여지가 없기를 바라는 구조를 세움으로써 이 일을 한다. 처음, 중간, 끝.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첫 페이지.' -'구조' 중에서. (82쪽)


 구조라는 묶음에서 이 할아버지는 말하고 있다. 그 중요성을. 우리도 국어 시간에 배우지 않았던가. 글을 구조를. 특히, 논술할 때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로 쓰라는 가르침을. 그런데, 이 할아버지. 구조에 대해 집착을 하고 있다. 좋은 의미로. 아름다운 구조도 할 수 있을 듯. 마치 훌륭한 건축가들이 멋진 구조로 건물을 짓듯이.


 '"물러서, 창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생략' 중에서. (296~297쪽)


 '창의적 논픽션은 없는 걸 지어내는 게 아니라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생략' 중에서. (298쪽)   


 어느 과자 광고에서 말하지 않던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고.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건 생략해야 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도 뜻을 전할 수 있다. 부처의 뜻은 마음에서 마음으로도 이어졌으니. 염화미소(拈華微笑)로.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중국 송나라 휘종은 궁중 화가들에게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踏花歸路馬體香)'라는 시제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꽃향기를 어찌 그릴까. 어느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를 그렸다고 한다. 한시(漢詩)에서 이런 표현을 입상진의(立象盡意,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라고 한다고 한다. 뜻을 직접 말하지 않고 형상으로 뜻을 말하는 시인. 그래서 시는 함축적이리라. 이 할아버지는 논픽션에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창의적 논픽션이라고.  


 이 '구조', '네 번째 원고', '생략' 외에도 '연쇄', '편집자들과 발행인', '인터뷰를 끌어내는 법', '참조 틀', '체크포인트'라는 묶음의 글이 있다. 글쓰기 과정을 주제로 한 여덟 편의 수필. 손주에게 전하는 듯한 할아버지의 삶이 담긴 자상하고 꼼꼼한 글이었다. 경험으로 가르침을 살짝 귀띔해주는 그. 풍부하고 깊이 있다. 그도 글쓰기를 '자학적이고 정신을 파괴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노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적극 공감이다. 고행을 견디는 수행자. 작가다. 그만큼 글쓰기가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이렇게 힘드니. 나도 앞으로 할아버지의 강의에서 들은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잊지 않고 지켜야 할 텐데. 고치며 네 번째 원고까지 가야 할 텐데. 이제, 첫 번째 원고 마무리다. 그런데, 졸리다. 또, 고치기 귀찮아졌다. 자고 싶다. 꿈에서 이백 할아버지와 두보 할아버지 만나서 뱃놀이 하고 싶어졌다. 글은 언제 고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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