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
변종모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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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꼼지락)


 여행자의 엽서다. 설레는 만남이다. 누군가 여행하면서 엽서를 보내 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먼 곳에서도 나를 생각한다는 느낌. 그 느낌을 향유하고 싶었다. 그 상상이 반은 현실이 되었다. 비록 우체국 소인은 없지만, 정확히 나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여행자의 엽서를 책으로 만났다. 오래도록 여행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그. 그의 72통의 엽서. 바다, 산, 강, 사막, 도시 등. 세상 곳곳의 낯선 길에서 보낸 그의 엽서. 그에게서 직접 엽서를 받은 이들이 부러워졌다. 여행지의 감성이 가득 담긴 여행자의 숨결 하나하나. 포근하게, 찬란하게 왔을 테니. 그 곁에서 나도 살짝 들이마셔 본다.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졌다. 좋은 것을 마주하는 일은 항상 그렇다. 작게 웃고 있는 얼굴 하나가 모든 풍경을 빛낸다. 따뜻한 봄의 강가나 화려한 사원에서도 아이의 웃음 한 뼘이 가장 빛나고 좋은 풍경이 되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아이는 분명 봄이겠지.' -'봄이겠지' 중에서. (14쪽) 


 '멀리 떠나와서야 가까운 것들을 알겠다.' -'먼 곳의 정오' 중에서. (32쪽)


 '때론 아침 출근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지. 이대로 멈추지 않고 달리다가 몇 개의 국경을 넘고 대륙을 지나 몇 번의 계절이 바뀔 때, 누군가가 누른 붉은색 하차 벨이 울리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플랫폼이었으면 좋겠다고. 내린 곳에 당신이 서 있다면 더욱 좋겠다고.' -'여행자의 출근길' 중에서. (38쪽)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기도 하겠지만 그마저 사랑 아니겠나.' -'나도 알고 있다' 중에서. (76쪽) 


 '아무리 멀리 돌아도 끝내, 그대가 원하는 그곳에 도착할 것을 안다. 언젠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중에서. (110쪽)


 '문득 뒤돌아보며 웃게 되거나 자주 내 마음속을 간질이는 것. 제일 많이 생각나는 따뜻함이나 소소한 행복. 그것으로 견고한 집을 짓고 살자. 허무의 넓이도 공허의 깊이도 작은 따뜻함을 이길 수는 없다. 그것만 끌어모아도 커다란 행복이다. 굳이 떠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많다.' -'여행자가 여행자에게' 중에서. (138쪽)


 여행지에서 느낀 그의 조각들. 작지만 따뜻하다. 그 조각 모음이다. 모으니, 또 커다란 행복이 된다. 사실, 일상이 힘겨울 때, 떠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나를 잡아맨다. 요즘에는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여행은 더 머뭇거리게 되고. 다행히 우리나라는 감염병이 힘을 잃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고. 이런 때, 이런 여행자의 엽서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웃는 아이에게서 봄을 보았고. 나도 내가 내린 곳에서 꿈 속의 당신이 서 있다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는 것도 사랑일까. 그렇게 작게나마 물음표를 가져 보고. 사랑했다면 사랑이겠지. 그렇게 또 작게나마 느낌표를 남겨 본다. 그리고 여행은 아무리 멀리 돌아도 끝내 내가 원하는 그곳에 도착할 것임을. 그 앎.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됐다.

 그가 여행에서 할 말과 사진들로 그의 바람처럼 할 수 있을 것 같다. 팍팍한 일상의 간격을 넓힐 수 있을 것 같고. 또, 나의 일상을 힘껏 껴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 또는 사소한 모든 것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래도록 여행자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내가 오래도록 여행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일 이의 숨결을 느꼈다. 솔직히 처음 들었다. 그의 이름을. 변종모라는 이름을. 이제, 기억하리라. 그의 이름도, 그의 숨결도. 그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다가 아니었다. 그가 직접 느끼게 된 작지만, 따뜻한 숨결들. 감성적이고 인상적인 글과 사진으로 된 그 숨결들. 나에게 스며들었다. 사진 한 장, 엽서 크기의 글. 그 안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여행자였다. 과시적인 여행이 아닌, 담백한 여행. 그가 하는 여행이 그랬다. 그러니, 그런 함축이 있었으리라. 소중한 이다.

 그가 정말 앞으로도 여행자이길 빈다. 그리고 이렇게 작지만, 따뜻한 숨결이 담긴 엽서를 계속 보내기를 소망한다. 나의 이런 마음의 등불이 올라가 별이 되면, 그도 보고 웃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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