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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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 (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in dubio pro reo)는 원칙에 근거,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①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많은 송사(訟事)가 있다. 그 가운데, 죄를 논하는 송사가 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판결이 있기도 하다. 솔직히 오심(誤審)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그들도 실수하기에. 그렇기에 재판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쉽지 않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우리의 법. 그 가운데 하나가 증거재판주의. 그것에 너무 얽매여 기계적으로 판단을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 '합리적 의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야기가 있다. 소설이다. 무슨 이야기이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들어 보자.  

 

 20대 초반의 남성이 열 살 가까이 연상인 여자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했다. 얼마 후, 여자친구가 프런트에 달려왔다. 남자친구가 젤리를 먹다가 목에 걸려 숨을 못 쉰다고. 남자는 결국 사망. 질식사였다. 유가족은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사망보험금 3억 원이 있다. 수익자는 여자친구였다. 여자친구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되었다. 일명 '젤리 살인사건'이다. 판사 현민우의 눈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친구 김유선. 생을 떠난 남자친구 이준호. 그들의 재판을.    


 '재판을 비난하거나 누구를 규탄하거나 현실의 결론을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 독자들이 그 사건과 이 작품의 사건을 동일시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재도 '젤리'로 바꾸었고, 당사자들의 성별도 바꾸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허구다. 진실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에 있다.' -'작가의 말' 중에서. (305쪽)


 이 소설의 이야기.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이른바, '낙지 살인사건'1과 흡사하다. 작가의 말을 보니, 그 사건과 이 작품의 사건을 동일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실은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에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게, 법이 정의를 찾아줄 거라는 환상입니다." -183쪽.


 '"여러분은 납득할 결론을 향해 꾸물꾸물 나아가는 달팽이 같은 존재를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에는 행선지가 없습니다. 무한궤도를 무심히 도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인 거죠. 법은 정의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규칙 속에서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는 체제의 유지가 우선 목표입니다." -184쪽.


 '"……법원이란 곳은 변화를 주도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변할 때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다가 뒤처리를 하고서야 자신도 모습을 바꾸죠. 당시만 해도 남성 중심, 가부장적인 의식이 강했으니까……. 요즘에는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죠. 성범죄 양형이 대폭 올라간 건 결국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그걸 따라가는 존재에 불과해요."' -218쪽.  


 법은 정의를 찾아줄까. 솔직히 모르겠다. 사법농단 의혹 등. 사법부는 우리의 불신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은 있어야 할까. 그 대답은 '물론'이다. 법이 없다면 큰 혼란이 오기에. 그렇게 있어야 하는 법원. 그 법원이 올바르게 되도록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싶다. 우리의 작은 촛불 하나하나로. 그렇게 생각해 본다.

 

 광화문 앞 해치 동상.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판사에서 이제는 변호사가 된 그. 이 책의 작가 도진기다. 우선, 법은 그의 앞마당이기에 믿음이 간다. 그가 던진 질문인 이 법 이야기. 나는 해치 또는 해태(獬廌獬豸)2를 생각했다. 상상의 동물인 해치. 법이라는 말이 해태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즉, '해태가 물처럼 고요하게 판단해서 틀린 상대를 받아버린다는 의미'의 고자(古字)인 灋에서 법(法)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복잡한 자는 제외하고. 그 해치. 우리에게도 그런 해치가 법과 함께 있으면 한다. 송나라의 유학자 육상산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고 했다고 한다. '백성은 가난함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음을 걱정한다'라는 뜻이다. 논어에서 유래했다3는 이 말.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나온다는 이 말. 이 말처럼 백성을 고르게 할 해치. 사람들의 맑고, 바른 마음에 있으리라. 우리의 법이 해치와 그런 세상을 이루어 나아가기를.


 도진기의 '합리적 의심'이라는 이 이야기. 친숙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법정. 그리고 '산낙지 살인사건'이라는 이 두 친숙함. 거기에 인간성의 가장 밑바닥을 처절하게 그린 심리는 마지막의 놀라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가의 성실함이 그렇게 했으리라. 매혹적인 이야기다.  



  1. 나무위키의 '산낙지 보험 사망 사건' 항목 참조. ( https://namu.wiki/w/%EC%82%B0%EB%82%99%EC%A7%80%20%EB%B3%B4%ED%97%98%20%EC%82%AC%EB%A7%9D%20%EC%82%AC%EA%B1%B4 )
  2. 나무위키의 '해태' 항목 참조. ( https://namu.wiki/w/%ED%95%B4%ED%83%9C )
  3. 논어 계씨편의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불환빈이환불안(不患貧而患不安)'. 즉,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않은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지 않음을 걱정하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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