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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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겨울이 다가오면, 으레 뜨개질을 하셨다. 그렇게 가족들의 옷과 목도리 등을 지으시고는 했다. 어느날, 어머니는 나에게 말 문양이 들어간 스웨터를 입혀 주셨다. 나는 그 옷을 자랑스레 입고 다녔고, 친구의 부름으로 그 집에도 갔다. 친구의 어머니는 놀라시며, 그 옷의 출신을 물으셨다. 그 출신은 어머니의 손끝이라고. 정성으로 어머니께서 지으셨다고 하니, 더 놀라셨다. 어머니의 솜씨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기에. 나는 그런 어머니의 따스함으로 자랐다. 이제 어머니에 이어 여동생이 따스함으로 키우고 있고. 그리고 따스함을 잇는 이야기가 있다. 마리카의 이야기. 한 편의 동화 같은.


 '엄지장갑은 털실로 쓴 편지 같은 것.
 좋아하는 마음도 말이나 글 대신 엄지장갑의 색깔이나 무늬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좋아하는 마음'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63쪽.


 '엄지장갑을 떠준다는 것은 온기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직접 손을 잡아줄 수 없어 엄지장갑을 떠서 선물하는 것입니다. 엄지장갑은 손의 온기를 대신 전해주는 마리카의 분신입니다.' -148~149쪽.


 마리카라는 여자아이가 첫울음을 낸다. 루프마이제공화국에서. 그곳은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나라. 흑빵 등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음식의 나라. 노래와 춤을 더없이 사랑하는 나라. 꽃과 나무 등의 정령을 믿는 나라. 그리고 엄지장갑이 함께하는 나라다. 그 나라에서 마리카는 자란다. 역시 따스함으로. 나라에서 정한대로 열두 살에 수공예 시험도 치르고. 열다섯 살에 사랑을 만나서 사랑의 엄지장갑을 뜨고. 마리카의 깊은 사랑을 받는 그는 야니스. 그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그런데, 결혼하고 5년이 지난 시간, 마리카의 나라가 지워진다. 얼음 제국에 의해서. 그렇게 노래와 춤이 지워지고, 민속의상도 사라진다. 오직, 엄지장갑만이 이어진다. 털실로 쓰는 편지인 엄지장갑만이, 온기를 선물하는 엄지장갑만이. 그럼에도 마리카와 야니스는 순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야니스마저 연행되어 떠나고. 

  

 

(사진 출처: 작가정신 블로그)


 '비 갠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습니다.

 지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그네도 반짝입니다. 아름다운 꽃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무지개가 아름다운 빛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마리카는 자신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변화했을 뿐입니다.

 (…)

 슬픔의 눈물은 흐르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상쾌한 바람이 불 뿐입니다.' -193쪽.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웃으면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슬퍼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습니다.' -200쪽.


 '"Paldies!"

 마리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고맙다는 말로 생을 마쳤으니 행복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203쪽.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일상에서 작은 기쁨, 잔잔한 감동을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가와 이토 인터뷰 중에서.


 마리카의 일생을 그리며, 슬픔의 강을 건너 웃음을 만나라는 이야기다. 때마다 엄지장갑으로 '털실로 편지'를 쓰는 사람들의 따스함. 잠에는 자장가가 다가가고, 따스함에는 엄지장갑이 찾아간다. 그 따스함이 혈맥에 정겹게 흐르며, 고마움을 남긴다. 엄지장갑은 따스함이 고마움으로 이어지는 실이다. 따스함은 자라게 하기에 고마움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에는 한 결, 한 결 아리는 슬픔에서 웃음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 웃음이 모여, 소소한 행복을 이루고. 그렇게 행복은 은은히 빛나는 색과 무늬로 우리의 곁에 머물고. 애써 찾지 않아도. '파랑새'처럼.


 '보석함처럼 반짝이는 라트비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이야기 조각들을 모았다. (……) 그곳에서 만난 숲, 바람, 햇빛, 호수, 사람들의 선량한 웃음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란다.' -'일러스트 에세이 '라트비아, 엄지장갑 기행'' 중에서. (218쪽)


 라트비아를 바탕으로 한 상상의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이라는 나라. 그 나라의 얼굴과 마리카의 일생. 따스함이 마리카를 자라게 했다. 마리카도 따스함으로 많은 이들을 자라게 했고. 그리고 마리카의 마지막에는 고마움으로 장식하고. 나도 어머니의 따스함으로 자랐다. 그런 어머니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드린다. 이 이야기를 만나며. 고마움은 행복의 시작이다. 그리고 작가 오가와 이토의 바람처럼 라트비아의 숲, 바람, 햇빛, 호수, 사람들의 선량한 웃음이 어김없이 나에게 전해졌다. 처음 만난 그녀의 이 소설. 그 따스함에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 고마움은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러하리라.




 덧붙이는 말.

 

 하나. '본문 중의 ‘ミトン(미튼)’은 통상적으로 엄지손가락만 분리되어 있는 장갑인 ‘벙어리장갑’을 가리키지만, ‘벙어리장갑’이라는 단어에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여 ‘엄지장갑’으로 옮겼다'고 한다.

 둘. 이 책 마지막에 일러스트 에세이 '라트비아, 엄지장갑 기행'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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