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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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리라.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주어진 낱말을 넣어서, 짧은 글짓기를 했었다. 한 문장으로. 숙제로. 나름 고민해서 지었다. 생각보다 어려웠기에. 선생님은 어휘의 힘과 작문의 힘을 키우기 위해 그런 숙제를 주셨으리라. 지금도 낱말을 찾가다 보면, 그 낱말의 예문을 볼 때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대체로 좋은 문장들이다. 그렇게 한 문장이지만, 간결하고도 밀도 높은 문장은 지금도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문장이 적게 모인 짧은 글이라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짧은 글에 깊은 감동과 높은 재미를 담는 건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리라. 그런 내공 깊은 고수를 만났다. 소설가라 한다. 그의 소설을 만나지 않고, 산문을 먼저 만났다. 20년차 소설가의 산문. 20년 동안 돈과 바꾼 1500여 개의 산문 중에서 추린 산문. 126편.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 천지다. 괴력난신의 파노라마다. 미디어와 사이버 세상은 괴력난신 공작소 같다. 하기는 나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잡생각으로 점철된 괴력난신 덩어리다.' -'괴력난신' 중에서. (91쪽)


 공자님도 괴력난신을 가능한 줄여보자고 말씀하셨다는 그. 역시, 해학적으로 그의 나날들을 그리고 있다. 네 묶음으로.

 1부는 '가족에게 배우다'라는 묶음. 그 가운데 '어머니는 야담가'라는 산문이 있다. 맞울림이 온몸에 이어진다. 옛 여인분들처럼 우물가에서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야담을 곳곳에 담아 오신다. 난 경청하고. 또, '대출 세계관'에서 작가는 도서 대출을 말하지만, 아내는 은행 대출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도 대출이라는 낱말을 보면, 도서 대출을 먼저 생각한다. 작가와 같은 세계관인가. 동질감을 안 가질 수가 없다.  

 2부는 '괴력난신과 더불어'라는 묶음. 그 가운데 '스스로 반짝이는 별'이라는 산문에서 열정을 말하는 그. 어린이가 열정을 바치는 것은 스스로 반짝이는 별이 되기 위함이라는 그. 세상을 바라본 생각의 눈이 깊음에 감탄이다.

 3부는 '무슨 날'이라는 묶음. '법의 날'에서 작가는 말한다. '법아, 법 없이 살 사람들을 더 이상 울리지 마라'라고. 나도 자연스레 중얼거렸다. 진실로 그래야 한다고.

 4부는 '읽고 쓰고 생각하고'라는 묶음. 그는 소설가이기에, 글과 책 이야기를 한다. 그 가운데 한 이야기.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에서 말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이 무릉도원일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지금, 서평이라고 쓰고 있는 나. 왜 쓰고 있을까. 그렇다.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나와 같은 이들이 많아지기를.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보물 제2010호.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절로 웃을 수밖에 없는 소설.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는, 가진 자들의 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날이 바짝 서 있으면서도 울음보다 강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런 웃기는 소설.

 (…) 다짐 삼아 얼밋얼밋 그려진 웃는 내 얼굴 보고 주문을 읊어본다. 웃어라, 내 얼굴! 웃어라, 내 소설!' -'웃어라, 내 얼굴' 중에서. (340~341쪽)


 예전에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1 - 남녀탐구생활'이라는 방송이 있었다. 일상 속에서 남녀의 각각 다른 심리와 행동을 재밌게 재연한 방송이었다. 공감에 공감을 했었다. 아마도 탐구 생활을 제대로 했기에 그랬을 거다. 소설가 김종광 씨도 탐구 생활을 제대로 했다. 훌륭한 생활 탐구가인 듯하다. '웃기는 소설'을 쓰고 싶다던 그. 이제는 '웃기는 산문'을 썼다. 그래서 웃었다. 마치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의 웃음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고, 아픔과 슬픔을 녹이는, 꿈과 바람을 담은 그 미소. 옛 사람들은 수막새의 저 미소를 보고 그대로 웃음을 지었겠지. 나도 이 글들의 미소를 보고, 그대로 웃음을 지었다. 수막새에 그려진 웃음과 포개어졌다. 편지이자, 회고록이자, 기행문이자, 일기인 이 글들. 그 안에서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도 생활을 탐구하고. 그렇게 생활의 발견을 하나하나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나도 주문을 읊어본다. 웃어라,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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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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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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