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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상상은 눈부시다. 새로운 아침을 여는 찬란한 날개이기에. 그 날갯짓으로 무한히 나는 상상. 경이롭다. 그 상상이, 그 날개가 날면서 담아온 눈물과 땀. 그렇게 품은 깊고 넓은 바다. 살아 있게 하는 그 바다. 맑은 그 바다는 많은 살아 있음을 낳는 어머니가 된다. 그런 상상으로 빚어진 열네 가지 이야기가 있다. 나도 더불어 상상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 -‘종이 동물원’ 중에서. (14쪽)
이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다. 만들어진 모성이 아닌, 스스로 솟아나는 모성. 따뜻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종이접기처럼 접어서 간직하고 싶었다. 숨을 불어넣어서. 소중히.
잭, 이 이야기의 나다. 어릴 적에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어머니께서 포장지로 종이접기를 해주셨다. 특별한 종이접기를. 마법 같은 종이 동물들은 친구였다. 그런데, 미국 백인 아버지. 중국 황인 어머니. 그 아들인 나. 미국의 백인과 다른 나. 그 다름이 싫어, 어머니와 종이 동물들을 멀리하는 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늘로 떠난 어머니. 어느 날, 나는 어머니께서 남기신 편지를 만난다. 슬픈 편지를.
‘그런 이야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은 그냥 관심을 받고 싶은 거예요. 그 왜, 2차 대전 때 일본군한테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 매춘부들처럼.’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중에서. (513쪽)
731부대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다. 한국인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이야기. 그 희생자분들을 추모한다. 작가도 추모하며 지은 이야기리라. 작가는 숨김없이 731부대의 그 잔학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냈다. 과거의 역사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술로. 그렇게 그들의 만행이 증언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진지한 탐구에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이 두 이야기. 그밖에 열두 이야기가 더 있다. 그 여러 이야기는 눈부신 상상으로 지난 기억을 분명하게 다시 그리고 있다. ‘종이 동물원’에서는 잭의 기억,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731부대의 기억. 그 기억으로 글에서 느끼게 되는 놀라움과 신기함이 강화된다. 애수(哀愁), 향수(鄕愁)도 진한 향을 내게 되고.
또, ‘파자점술사’, ‘모노노아와레’는 특이하게 언어의 기호인 문자를 재료로 하고 있다.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에서는 작가의 ‘책’ 사랑을 공감하게 되고.
SF 환상 문학 단편 선집인 이 책. 상상이라는 나래가 담아온 눈물과 땀이 모인 바다로 만들어진 조약돌 같은 책이다. 오랜 시간, 상상의 꿈이 담긴 바다의 파도로 태어난 조약돌. 황홀한 햇살에 반짝인다. 오랫동안 반짝인다. 슬프고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래서 홀로 그 반짝임을 고이 새겨 둔다. 눈부시게.
덧붙이는 말.
하나. 단편 ‘종이 동물원’이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2012년에 수상했다고 한다.
둘. 단편집 ‘종이 동물원’이 2017년에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셋. 단편 ‘모노노아와레’가 휴고 상을 2013년에 수상했다고 한다.
넷.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