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하지만 내가 읽어보지 않은 작가는 그저 이름일 뿐이다. 내게는 중국의 작가 위화가 그랬다. 그의 대표작, <허삼관매혈기>가 한창 읽힐 때도 웬일인지 인연이 닿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이번 계기가 아니었다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에 <원청>을 읽고 작가의 세계관이 아주 깊게 각인되었고 비로소 의미 있는 작가로 내 인생에 들어왔으니 책도 다 만남의 때가 있는 것 같다.

“난세의 전기傳奇적 이야기를 다룬 <원청>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린샹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몇몇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각 개인의 삶과 함께 역사적인 혼란 속에서 그들이 삶을 지켜내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로서의 순정과 지조, 남자들 간의 의리와 믿음을 보면서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이 머물기도 했는데 <원청>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보다 “인생”이었다. 인생이라는 것이 선택으로 점철된 삶의 합이라 할 때 린샹푸가 선택한 삶에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참 아프고 애달프고 존경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린샹푸가 존재하지도 않는 “원청”을 찾아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이 끝나고도 린샹푸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삶을 자연스레 그려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당신이 또 말도 없이 떠나면 내가 찾으러 갈 거예요.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예요.”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젖먹이 갓난아기를 안고 존재하지 않는 곳 “원청”을 찾아 나선 그가 낯선 곳에서 연고도 없이 그곳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기까지의 삶의 태도를 보는 것 또한 내게는 인상적이었는데 평소에, 책에서든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눈여겨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삶이 어떠하든지 자기 삶에 진중하고 진솔하고 진심을 다하는 태도는 반짝반짝 빛을 발할 수밖에 없고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데 린샹퓨는 그런 면에서 참 호감이 가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한 인생의 허망함에 마음이 저밀 정도로 아프고 눈물도 나는 작품이었지만 살면서 느낀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대에서 보지 못한 열매는 결국 자녀를 통해서든 어디에서든 흘러 흘러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희망 때문에 위화의 <원청>을 마지막에 품에 꼬옥 안고 다독이며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후에 린샹푸의 삶을 통해 맺게 되는 열매가 어디에선가 풍성하게 열릴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여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품명 하피(아르피에)의 성모
아티스트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
제작연대 1517년
종류 유화
기법 패널에 유채
크기 178 x 207 cm
이미지출처 wikimedia commons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의 라이프는 아버지 가업보다 예술에 더 관심이 많아 베를린의 전시회장을 누비며 그림을 감상하는데, 어느 작가의 자화상 앞에서 운명과도 같은 전율을 느낀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아르피에의 성모’의 마돈나를 닮아 ‘모피 입은 마돈나’로도 불리우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이 책의 작가 사바하틴 알리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아르피에의 성모’ 작품의 마돈나를 보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 덕분에 찾아 본 작품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성모 마리아를 보며 스토리를 구상한 작가와 자화상 작품 앞에서 전율을 느낀 라이프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늘 그녀를 찾고 기다렸다. 주의를 집중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사방에서 그녀가 남기는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쓰디쓴 경험을 거쳐 비로소 통찰력을 갖게 됐는데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150쪽)

“쓰디쓴 경험을 거쳐 비로소 통찰력을 갖게” 된 그 무엇을 나 또한 기다리는데 사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어도 즐겁게 나를 소진할 수 있는 이 다음의 사건을 기다린다.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그 생생한 느낌을 기다리며 오늘도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거센 바람을 뚫고 좋은 소식이 오고 있음을 믿으면서.

이제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마음에서도 덮고 다른 책을 시작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지음, 이난아 옮김 / 학고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는 사랑 이야기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튀르키예 청년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기 위한 숙련 과정으로 독일 베를린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음속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운명의 여인, 마리아 푸데르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한 남자의 사랑의 파노라마이며 감정 서사시이다.

 

이렇게 사랑의 이야기라고만 적어두고 그들의 사랑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게 된다면 내 안에서는 정작 하지 못한 말들이 나를 괴롭힐 것이기에 차분하게 내 생각을 따라가 보려 한다.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나에겐 사랑 이야기보다 한 남자의 슬픈 인생사로 읽혔고, 그의 인생이 누구랄 것 없는 우리의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책을 덮고 한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상대방에게 진실하고, 어떤 장애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며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내 모습이고, 누구나의 모습일 것이다. 나를 믿는 만큼 상대방을 믿을 수 있다면 오해 속에 멀어지는 관계가 없을 텐데 우리는 내가 만든 오해와 불신 속에서 그 사람의 진심을 알기도 전에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에 대한 내 신뢰는 허상이고, 마음 저변에 깔린 스스로에 대한 자기 불신과 자신 없음이 그대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투영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안의 상처와 소심함에서 비롯되는 의심과 불안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주인공 라이프처럼 "주변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 이 외로움으로부터 도리어 자부심과 고통스런 희열을 느끼" (48쪽) 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늘 그녀를 찾고 기다렸다. 주의를 집중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사방에서 그녀가 남기는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쓰디쓴 경험을 거쳐 비로소 통찰력을 갖게 됐는데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150)

 

"영혼이 짝을 찾으면 구차한 설명 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제야 우리는 진정으로, 영혼을 갖고 살기 시작한다. 모든 망설임과 부끄러움을 제치고 모든 규범도 뛰어넘어, 두 영혼은 서로 부등켜안는다. " (152)

 

라이프는 운명 같은 마리아를 만나 비로소 자신에게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으며 세상에 오직 그 한 사람만 존재하는 듯이 살아간다. 모든 이성과 감성이 그녀를 향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인생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온 삶이 그녀에게 집중한다. 그런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 것은 너무도 다행이지만 라이프는 자신의 불신과 의심으로 인한 오해로 결국 허망한 세월을 보내고 만다.

 

"세속적인 행복이든 물질적인 재산이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하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은 뇌리에서 절대 떠나지 않고 불쑥불쑥 떠올라 쓰라리게 마음을 헤집는다. 어쩌면 우리가 놓지 못하는 건 떠나간 기회가 아니라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미련일 것이다. 미련만 벗어던진다면 우리는 모든 걸 운명이라고 돌리고 받아들일 테니까! " (273)

 

실패의 좋은 점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에 있다. 이별도 사랑의 실패라고 한다면 사랑에 있어 내게 부족한 점과 내가 바라는 사랑, 내게 맞는 사람에 대한 안목이 힘든 이별 앓이를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일 텐데 라이프는 그런 기회마저 놓친 비련의 주인공이다.

 

온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일생을 두고 이루어가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중에 내 성격에 지대한 공헌을 한 내 안의 상처를 보듬고, 상처를 준 사람과 나를 분리하고, 용서하고 나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나로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내적 힘을 기른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나를 찾아온 사람과도 안정감 있는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도피처도 아니고, 내 쉴 곳도 아니며 내가 평생 의지할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내 삶에 사랑이 다가 아니며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안다. 관계에서 누리는 쉼과 안정감은 애써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에서 절로 따르는 것이라는 것도.

 

"자연의 섭리는 내 정신세계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다른 건 다 잊고, 우리의 우정도 자연의 섭리를 따르도록 놔둡시다. 억지로 방향을 정하거나 섣부른 결정을 내려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자고요." (177)

 

섭리를 따르는 것. 애써 부정할 수 없는 절묘한 타이밍과 서로가 주고받는 호기심과 내 맘을 움직이는 영적 매력을 따라 자연스레 흘러가며 하나가 되는 것.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급할 것이 없고, 어느 때든지 내 사람이 오리라는 확신 가운데 내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한 것이 사랑을 맞이하는 최선의 태도일 것이다. 라이프의 인생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 또한 아픈 이별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우리는 아픈 이별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깨달음도 있으니 아픔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신이 숨겨 놓은 신비는 그런 아픔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도 우린 같은 결론에 도달했군요. 우리 둘 다 한 사람을 찾고 있네요. 우리와 같은 사람을요" (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도의 자리로 - 영광의 그분과 거룩한 발맞춤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S.루이스의 책에서 기도에 관한 글들을 엄선해서 모아 놓은 책이다. 무신론자에서 회심한 이후로 기독교 변증가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그토록 설득력 있고, 균형 잡힌 글들을 쓰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기도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책 독서 모임 - 오늘의 철학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1
박동수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속 대두되고 있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중심을 잡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는데 마침 박동수의 <철학책 독서 모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뜻 구입하게 된 데에는 “독서 모임”이라는 친근한 단어가 한몫했다.


책으로 읽고, 오디오북으로 한 번 더 듣고 그렇게 읽고 듣다 보니 선명하게 인식되는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인 “박동수”였다. 처음엔 단순히 철학책 편집자니까 이렇게 물 흘러가듯이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철학책 편집자로서의 어떤 사명감과 노고,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이 책에서도 “모든 시대에는 언제나 오늘의 철학책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것처럼 박동수는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시대를 사유하게 하는 통로이자 세상의 실상과 마주”하게 하는 오늘의 철학책을 발굴하고 처음엔 자신도 이해되지 않던 내용을 끝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하는 그의 일을 심히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전 철학책이 아닌 오늘의 철학책을 발굴하고 출간하는 편집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선구자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철학책 독서 모임>에 소개된 철학책 열 권은 독서 모임의 동료 편집자들과 엄선한, 한국에서 출간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각종 사회 문제와 기후 위기에 관한 문제까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게 한다. 각 주제에 따른 책 소개와 논평, 그리고 독서 모임에서 나왔던 좋은 사례들을 가지고 저자 박동수는 논지를 힘있게 끌고 간다.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자문하는 것이 철학의 주요 문제로 자리한 지금, 철학자 이졸데 카림이 말하는 다원화 시대에서 “우리”, “나와 타자들”, “우리 너머의 우리”까지 깊이 탐구해야 하는 주제임을 각성시키는데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생태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있어 독자로서도 끝까지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열 권 중에 읽은 책이 <모든 것은 빛난다>, 한 권이라도 있어서 반가웠고, 소개된 책들이 다 흥미있었지만 특히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은 관광객의 특성을 통해 관광객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사회 전반에 그리고 정치에 끌어 들일 수 있을지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꼭 읽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 숲의 루나족의 삶을 통해 “알지 못한 채 알아가기”라는 방법으로 “우리 너머의 우리”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었고 기독교인이면서 사람과 동물을 잡아먹는 루나족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 박동수의 시각에 도움을 받아 여러 전반에 걸쳐 우리, 나와 타자들, 우리 너머의 우리, 그리고 기후변화와 인류세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덕분에 오늘의 철학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사월의 책>에서 출간된 철학책에서 편집자 박동수라는 이름을 찾는 재미도 있겠다. 앞으로 이 책을 필두로 문학 편집자, 과학책 편집자 등 각 분야의 편집자의 책이 나와도 좋겠다. 그들만큼 전반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해박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소개하는 책들을 넘나들며 신이 나서 쓸 것 같다.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처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4-07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7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lju 2023-04-2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