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다가 반 쯤 남겨 두었던 이다혜 기자의 여행 에세이가 눈에 띄어 오늘 완독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필력이 좋으신지 읽는 내내 감탄을 했다. 팟케스트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입담에 놀라곤 했는데 입담과 필력은 함께 가는 것일까. 참 여러모로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분이다.

지금껏 읽었던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는 사진과 함께 여행 안에서 만나는 작가의 감성을 깊이 들여다는 시간이었다면 이다혜 기자의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는 여행에 대한 유쾌한 독백을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경청한 느낌이다. 그리고 후반부 무렵에 드러나는 그녀의 내장요리에 대한 글은 정말 맛깔스럽다. 내장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물론 경험에 의한 산지식이겠지만)을 읽고 있노라면 내장요리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책에 적힌 식당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마터면 메모할 뻔 했다는 건 안비밀.) 조만간 이다혜 기자의 요리 에세이가 나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건 과연 나 뿐일까.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보는 경험이 눈을 뜨게 해주고, 그것이야말로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떠났을 때만 '나'일 수 있는 사람들은 나름의 행복을 찾은 이들이겠지만, 나는 떠났을 때만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결국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나라는 인간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여행이다.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떠나기. (p.9)

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p.107)

 

나에게 여행은 그랬다. 소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목적은 거창하지만 알고보면 내 우울을 대면하는 시간이었고 낯선 곳에서 나의 외로움을 더욱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혼자 2박 3일 동안 여행을 다니며 만족스러운 듯 콧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마지막 날 밤에 내리는 비 속에서 예고도 없이 터진 눈물(점점 오열이 되어갔다지) 앞에서 나는 얼마나 초라했던가.  

그렇게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를 이끌고 그는 일본으로 떠났다. "여행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젤 중요한 것 같아." 그렇게 사랑스러운 말로 나를 감동시키며 떠난 오사카와 교토 여행은 나에게 여행의 참의미를 맛보게 해주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눈에 띈 제일 첫 집에 들어간 스시집은 우리가 지금껏 만난 가게 중에 젤 맛난 스시집이었고(지금도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다시 그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마지막 날 들어간 스시집은 지금껏 우리가 만난 가게 중 젤 맛없는 스시집이었다. 그 집은 지금도 두고두고 얘기한다. 마지막 모험은 안했어야 했어... 라고. 함께 오사카와 교토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느꼈던 기분좋은 긴장감과 낯선 거리를 산책하며 나눴던 대화들, 미소들은 여전히 행복했던 기억으로 내게 머물고 있다. 그 이후로 많은 곳을 다녔지만 우리는 여전히 오사카 여행이 최고였다고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여행지가 누구에게나 한 곳은 있을 것이다.

 

지금은 혼자만의 여행을 갈 기회도 없고 간다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진 않을 것이다. 그저 여행, 그 하나의 목적으로만 떠나는 또하나의 일상이 되는 것일테다. 이다혜 기자님의 글을 통해서 그녀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지, 여행력이 얼마나 길고 다양할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기회가 되고, 틈만 나면 언제든 떠났다는 그녀가 여행에 대해서 펜을 들었으니 얼마나 날개 달린 듯 적혔을까 싶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앞으로 떠나는 여행에서의 나의 마음은 어떨까. 한 번쯤은 이다혜 기자님을 떠올리지 않을까. 어쩌면 여행길에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가 함께 동행하지 않을까. 그곳에서 만난 북까페나 게스트 하우스에 가만히 꽂아 두고 와도 좋을 일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