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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 서툴면 서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지금 내 마음대로
서늘한여름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평점 :
사둔 지 오래 된 책을 오늘에서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얼마 전까지 SNS 친구였던 분이라 책이 출간되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었던 기억이 난다. 서밤님의 나이 때, 나도 4년 여를 다니던 회사를 앞도 생각하지 않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일하는 내내 슬럼프 없이 일하다가 4년이 넘어가면서 찾아온 단 한 번의 슬럼프와 피로도에 완전히 녹다운 되었고 계속 다녀야 할까 고민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그만 두어야 내가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을 때였다. 급여는 적어도 좋으니까 내 삶을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겠다고 선택한 곳이 지금의 직장이다. 여태껏 직장에서의 나는 늘 일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었고, 여전히 일은 많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예전의 직장에서처럼 워크홀릭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서 일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퇴근을 하던 지난날... 거기에서 만족감을 느꼈던 나였다.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어서 내가 나를 채찍질하던 지난날... 지금은 그저 아련하다.
서밤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고 여러 부분이 오버랩 되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순간들도 있었다. 누구에게도 거절을 잘 하지 못하고 지금 돌아보면 착한여자 컴플렉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위염으로 고생했는지도 모른다. 늘 삼키기만 해서, 늘 안에 담아두기만 해서 위가 못버텼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위염없이 잘 산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 아팠고 그로 인한 많은 시간들이 나를 성숙케 했고, 나를 변화시켰다.
어릴 적부터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한 명이라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견뎌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관심이 없다. 나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관계는 상대적인 거니까.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좋으면 나는 아랑곳않고 내 감정에 충실하게 대했고, 나를 싫어하는 그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는 감정들이 없으니 점점 관계들이 담백해졌다.
서밤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친구이자 남편의 이야기에서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사랑했던 사람이 생각났고, 지금의 연인이 생각났다. 인생에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두 사람. 처음 사랑과의 이별을 통해서는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사랑하던 당신과 내가 이렇게 헤어질 수 있다면 진정한 사랑은 없는 거라고... 우리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순수했던 사랑 속에 나의 청춘이 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의 청춘은 오롯이 사라졌다. 지금의 사랑은, 내가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던 믿음을 깨뜨려 준 사람이다. 그림자처럼 말없이 내 곁에 머물며 내 안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손 내밀어 준 사람. 서밤님처럼 불안에 예민한 나를 늘 다독이며 끝내 그 불안을 잠재워 준 사람이기도 하다. "네가 듬뿍듬뿍 주는 사랑을 받으며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다!" (p.33) 서밤님처럼 나도 그 사랑 안에서 새롭게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까지 나는 새롭게 퇴사와 이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고민을 했더랬다. 지금은 내가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저 막막해서 그게 두려웠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고민 덕분에 며칠 힘들긴 했지만 내 안에서 답을 얻게 되어 이제는 퇴사를 한다고 해도 두렵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겐 큰 수확이다. 그렇다고 지금 퇴사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견디며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 필요한 고민의 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사람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까.
나이는 계속 먹어 가지만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생각. 하지만 내 안의 상처입은 아이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이상 내 안에 슬픔 많은 아이가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는지 오랫동안 하던 블로그도 갑자기 없애길 여러 번, SNS도 두 번째 삭제다. 늘 갑자기. 이제는 SNS를 할 생각이 없다. 지금 새롭게 시작한 블로그를 어떻게든 삭제하지 않고 꾸준하게 꾸려가는 것이 그저 소박한 목표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내 얘기를 계속 꺼내다 보면 내 얘기를 내가 듣고 내 안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서밤님 덕분에 주절주절 두서없는 얘기들을 꺼낼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끄집어 내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원래 책일기의 목적이 이것이므로.
나도 누군가의 안전망 한 귀퉁이를 잡아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p.103) 이미 그런 분이셔요. 땡큐 서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