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장-폴 디디에로랑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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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어떤 책도 손에 잡히지 않던 때였다. 그럼에도 무어라도 읽어야지 하고 추천받아 읽은 책. 천천히 주인공에게 빠져들게 했던 매력이 있는 책이어서 다행히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다시 다른 책들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제목에 구미가 당겼고 누구에게, 왜. 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장을 열었다.

세상에 큰 기대가 없는 남자, 어릴 적부터 투명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길랭 비뇰은 책을 파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아침 출근길 지하철 보조의자에 앉아 전 날 공장에서 가져온 책의 낱장들을 하나씩 낭독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 출근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늘 같기 마련이다. 그들은 아침마다 숨을 죽이고 그의 낭독을 듣는 것이 출근길의 낙이다. 서로 연관이 없는 낱장들을 읽음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은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를 한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광경이다.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다. 아픈 사람들, 마음이 힘들어 자신만의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가만히 책을 읽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늘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되고,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음을 함께 경험해 보고 싶다. 그 전에 나에게 가만히 책을 읽어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먼저 위로받아야 다른 이에게도 낭독을 통해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위로해야지 하는 어떤 기대도 없이, 그저 담담히, 그저 묵묵히... 위로는 그 사람의 몫이니까.   

길랭 비뇰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주운 USB 때문에 사랑이 싹튼 그녀에게 쓴 편지를 읽을 때면 내 마음도 설렜다.

"한마디 덧붙이면, 얼마전부터는 희미한 색상을 생기 있게, 심각하고 근엄한 것을 덜 진지하게, 겨울을 덜 춥게, 참을 수 없는 것을 견딜 만하게,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추한 것을 덜 추하게, 요컨대 나의 삶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길랭 비뇰처럼 투명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도 낭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 매일을 견뎌 내었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인생이란 건, 살고자 하는 자에겐 수많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만 서 있다면 그 문을 만날 수도, 열 수도 없다는 것을 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문득 문득 생각나는 길랭 비뇰, 6시 27분에 책 읽어주는 남자. 그의 삶은, 지금은 어떤 문을 통과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기대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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