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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당신에게 메일을 쓰고 당신의 메일을 읽는 시간이 저에게는 일종의 '가족 타임아웃'이예요. 이 시간이 일상 밖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 섬에 당신과 단 둘이서만 머물고 싶어요. 당신만 괜찮다면요. (p.149)
당신한테 키스하고 싶어요.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돼요. 얼마든지 딱딱하게 써도 돼요. 난 그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p.153)
새벽 세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p.265)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져 있었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지인의 소개글을 읽고 나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에 어젯밤 펼쳐들고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다 읽고 잠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메일로만 이루어진 소설인데다 너무나 익숙한 대화체여서 무슨 의미일까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어서 지금의 나에겐 참 마침맞은 책인 듯 싶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이메일 데이트. 잘못 보낸 이메일로 시작된 그와 그녀만의 작은 세상. 차분하고 젠틀한 언어심리학자 레오와 이메일 세상에서만큼은 적극적인 두 아이의 엄마 에미. 누가 보아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에미에게는 굳이 이메일 속의 레오가 필요하지 않지만 잘못 보내진 이메일을 통해 시작된 이메일 데이트는 그녀를 점차 그녀가 속한 행복한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게 하고 레오에게 집착하게 한다. 친구에서 연인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은 읽는 이, 어느누구도 그럴 순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숨은 감정들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 세상에 너무도 많은 말들을 남기고 있고 사적인 공간이라며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만들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적인 마음들을 오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이웃을 맺고 레오와 에미처럼 둘만의 은밀한 대화들을 하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대상 그 이웃에게 사랑의 마음을 품기도 한다. 처음엔 그저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 시작된 채팅과 이메일 펜팔은 결국 레오와 에미처럼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집중하게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도 하지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비밀친구를 만들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의 동경이랄까. 아니면 이 세상엔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우리네 소망이랄까.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넘나드는 레오와 에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어쩌면 에미의 마음이겠지만. 이메일은 하고픈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담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에게 당장 듣고 싶은 대답은 바로 들을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이 어떤 의도에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에미처럼 지금 당장 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때도 있는 것이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는 그런 마음들이 아주 잘 드러나 있고 아주 현실적인 대화들로 가득차 있다. 작가의 경험으로 쓰여진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슬아슬한 감정선에 대한 자제력. 특히나 결혼을 한 사람이나 애인이 있는 사람이 채팅이나 이메일로 펜팔을 하려고 한다면 꼭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근데 결혼을 한 사람이나 애인이 있는 사람이 채팅이나 이메일 펜팔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아닐까. 무엇으로부터 도피하고픈 마음. 혹은 무엇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 마음... 레오는 에미에게서 실연의 아픔을 위로받고 에미는 평안한 생활과 남들에게 보여지는 행복한 가정의 표본의 모습에서 일탈을 꿈꾼다. 어쩌면 에미는 너무도 평탄했던 삶이었기에 레오에게 더욱 푹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라면 흔히 겪을 수 있는 이메일 데이트를 통해 지루한 삶에서 극적인 로맨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이룰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읽는 내내 에미 때문에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예전엔 나도 이메일 친구를 만들어서 내가 하고픈 얘기들을 다 쏟아내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결국 내가 택한 것이 블로그다. 어느 한 특정인이 아닌 블로그에 내 마음을 다 쏟아내면서 나는 치유되어 갔다. 어쩌면 불특정 다수에게 내 마음이 오픈되고 내 마음이 읽혀지면서 잃었던 평정심을 되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에미처럼 블로그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던 것도 인정. 하지만 내가 집착했던 것이 사람이 아니라 블로그여서 다행이고 레오와 에미가 공유한 은밀한 세계는 마음의 동경으로만 두고 싶단 생각도 한다.
그것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현명한 것임을 아니까.
이제는 굳이 동경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아도 현재에 충실한 것이 현명한 것임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