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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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그의 책은 처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지 않은지. 그의 작품을 아주 오래전부터 애독한 사람인 듯 착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렇게 나는 작가를 아주 친숙하게 느끼며 12월 세 번째 책으로 『惡人』을 선택했다. 이웃사촌님의 별 다섯개 짜리 책이었었지. 그리고 요시다 슈이치 작가 본인마저도 "감히 나의 대표작이라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설레이는 마음과 기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맘껏 기대하며 읽어주리라. 생각하며 책을 펼칠 수 밖에.

 

『악인』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과연 누가 악인인가'라는 생각꺼리를 남겨두고 끝을 맺는다. 작가는 그 해답을 독자들에게 맡긴 채 사건 전개,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심리 묘사, 상황 묘사에만 집중한다. 처음부터 그럴려고 작정한 듯 작가는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차단한 채 입을 다물고 있다. 어쩌면 독자들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요시다 슈이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악인] 그 자체에 있는 것일까. 그 [악인]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과 내면의 상처, 사랑에 대한 갈구..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우리 누구든 [악인]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 어쩌면 그런 이면의 정신세계가 [악인]의 근원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등장하는 인물마다 우리 누구나가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고 하나같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를 하나씩 안고 있다. 그 중 몇 몇은 그 상처로 기인된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로부터 벗어나고자  만남 사이트에 가입해 문자를 주고 받기도 하고 하룻밤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물론 그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던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그 사건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인지 알게 된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겠고.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은 갑자기 등장한 [미쓰요]로 인해 내용이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미쓰요]는 등장인물 [요이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요이치]에게 모성본능을 가지게 하면서 그에게 한없는 동정심을 갖게 하고  『악인』이라는 소설을 눈물젖은 연애소설로 전환시킨다.

 

옮긴이[이영미]의 말을 빌리자면

 

두 사람은 완전한 행복을 실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타자가 되어주지만, 끝내 행복해지길 원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의 절망적인 거리감을 체험한다. 비극이 예견된 그들의 만남은 그러나, 작품 전반부에 드러나 인간의 천박함과 추함을 인간 영혼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찬가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그들은 사람이란 얼마나 약하고, 악하고, 외롭고 , 강하고 그리고 우아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며, 우리는 그들에게서 고귀함과 나약함이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엿본다.  (p.478)

세상의 소통으로부터 단절된 듯 살아간 두 사람의 만남은 읽는내내 마음을 저리게 하고 안타까움에 눈물짓게 한다. 하지만 그녀 [미쓰요]조차도 [악인]에 대해 헷갈려 하는 것 같아 아쉽긴 했다.

 

내가 『악인』을 읽으며 울컥. 눈물 흘렸던 장면은, 품 속에 스패너를 감춘 요시노의 아버지 [요시오]가 [마스오]를 찾아가 [마스오]에게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렇게 다른 사람이나 비웃으며 살면 되겠어?"라고 말하는 장면. 무슨 장면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정말 눈물나더라.

 

아직까지 가슴에 『惡人』의 여운이 남아있어 먹먹하다. 읽은 느낌을 남기고파 적는 글은 두서없고..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와의 첫만남은 대성공. 고로 그의 작품을 하나씩 챙겨봐야겠다. 

"자네 소중한 사람은 있나?"

요시오의 질문에 쓰루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자기 자신까지 행복해지는 사람."

요시오의 설명을 들은 쓰루다는 고개를 저으며 "....그 녀석도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되는데 말이야." 

 

쓰루다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p.448)

이 본문은 [요시오]의 입을 빌려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미쓰요]가 던졌던 질문. "그 사람은 악인이었던 거죠? 그런 악인을, 저 혼자 들떠서 좋아했던 것뿐이죠. 네? 그런거죠?" 에 누가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善人이겠지만 다른 그 누군가에게는 惡人일지도 모르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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