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공지영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 마음의 상처로 인한 고통을 아는 작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신뢰가 오니 공지영님에 대한 마음이 잘 흔들리지 않더라. 그래서 더욱 고민없이 선택한 책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답답한 안개 가득한 무진시(市)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왜 작가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이름의 아이들을 내세워 사회의 부조리함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까. 계속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영문도 모른체 공지영님이 손잡고 데리고 다니는대로 무방비 샹태로 그 안개자욱한 무진시와 그 욕정의 도가니 자애학원..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한 무자비하고도 짐승만도 못한 어른들의 유린을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눈물 한 줄기와 헉. 하는 한 줄기 외마디 뿐. 나도 그 아이들을 그저 방관한 자들의 시선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 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p.292 작가의 말 中> 

 

그제서야 안도했다. 읽는 내내 나는 '작가가 너무하다'라며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읽는 내내 열 다섯, 그리고 열 살의 지체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어른들의 성폭행감으로 두는 것이 못내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린 형제까지도.... 하지만 그건 나의 오해였고 공지영님 또한 그 기사를 통해 그  사건을 글로써 쓰지 않으면 안되는 투사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용을 준비하면서, 글을 쓰면서 작가는 그리도 아팠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이 아팠으리라. 그 아이들의 절절함에 사무치게 아팠으리라..

 

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 자끄 프레베르 「밤의 피리 」 (p.50)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아내의 도움으로 무진시 자애학원의 기간제 교사로 오게 된 강인호. 그가 자신을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읊어준 시이다. 첫 만남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한 장면이었고 그 시는 결국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한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을 거대한 사건의 도가니로 몰고 갈 출발점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곳에 내려올 때 나는 거대한 대도시의 자본이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내버린 한 마리의 패배한 짐승 같았어... 그런데 내가 가르쳐야 할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어. 그건 뭐랄까, 정의 혹의 신성 혹은 좀더 존귀한 것에 대한 갈망.... <p.280>

 

그를 더욱 자기 안에 갇히게 할 것이라 생각했던 안개 가득 무진시에서 그는 결국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안의 정의와 갈망이 살아나 그를 아이들의 대변인이 되게 한 것이다. 듣지 못한다 하여도 말을 할 수 없다 하여도 그 아이들은 상대방의 진심을 가릴 줄 아는 인간이었고 그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강인호를 아이들은 그들의 선생님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많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빛 하나에도..손짓 하나에도.. 진심어린 소통을 담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서로가 혈연,지연,학연으로 똘똘 뭉쳐 다 드러난 거짓조차도 거짓이 될 수 없는 무진시는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짓밟혀가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거짓 속에 까맣게 멍들어 가고 있을까... 우리는 거짓으로 똘똘 뭉친 곳에서 너무도 무력하게 또는 너무도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연두의 절절한 눈빛과 유리의 해맑은 미소와 민수의 어른같은 미소..가 자꾸만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처럼 가정환경도 좋지 못한데 장애까지 가지고 태어나 심지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고 감정마저 무시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단 말이다. 나는 그런 환경이 아니어서 참 행복하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어떡하면 좋겠냐는 마음의 절절함을 말하고 싶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아무말 못하고 입을 막고 뜨거운 눈물 흘리는 어린 영혼들이 있을텐데..어떡하면 좋겠냐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아이들을 위해 울어주는 것밖에 없는 것인가... 이 거짓 세상을 변화시킬 잔다르크도 못되고... 나 한 몸 불살라 너희들의 안전과 복지를 책임져 주겠다 나설 유관순도 못되고... 그저 나부터라도 거짓을 거짓이라 말할  수 있고 진실된 세상을 만드는 작은 습관부터 다져가고 그런 소외된 아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결심 정도...가 다이다.  미안하다. 얘들아.

 

어느 한 기자의 기사로부터 시작된 이 소설은 내 마음에 콕 박혀 있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나게 했고 또한 세상에 소외된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게 해주었다.  그렇게 욕정의 도구로 짓밟히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게 오늘도 마음깊이 기도하는 수밖에...

 

서유진은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가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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