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심호흡을 한 번 해볼까. 먹먹한 가슴이 조금은 편안해지게... 오늘 하루내내 대니얼 고틀립과 함께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속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끄집어 낼 수 있었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내가 상실의 아픔 속에서 허우적 거릴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인생수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끝내 나는 그 책을 펼치지 못했다. 그 책을 읽고나면 내 아픔을 현실로 인정해야함이 두려웠고 그 책에 빠져들어 상실감의 아픔을 계속 토해내야 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내 마음에 안정과 평안이 찾아온 지금, 나는 감히『마음에게 말걸기』에 도전했다.

 

아침 7시 30분 나는 사랑스런 가족들에게 차례로 키스하고, 살짝 언 잔디 마당을 지나 낡고 정든 내 차 도지 다트에 올랐다. 지금 이 순간도 그때 내 발밑에서 사각사각 부서지던 얼음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나의 두 발로 땅을 밟은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p.12)

 

성공적인 정신의학전문의였던 그는 서른 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로 살아가게 된다. 그 사고로 인해 끔찍한 비극을 겪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들이 지금의 대니얼 고틀립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혼, 누나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간다.

 

이 책이 나에게 소중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단순히 어느 심리학자의 잘 정리된 이론이 아니라 대니얼 고틀립이라는 심리학자가 직접 그 고통에 동참하여 그 모든 고통을 다 겪고 그 깨달음으로 적은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단어 하나, 어느 문장 하나 소홀히 읽을 수 없었다. 그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더욱 그럴 순 없었다. 

 

그는 전신마비라는 불의의 사고를 통해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깊이 접근하면서 그 모든 해답은 단 하나,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내려놓음'의 철학으로 일관한다. 너무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 가끔은 포기하고 내려놓기. 그리고 사랑과 연민으로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안아주기. 그가 사랑에 대해, 죽음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깊이 공감하며 그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는 어쩌면 전신마비의 장애를 입었기에 자신의 직업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고 자신을 찾아 온 많은 환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이렇게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그런 생각. 내 주위에도 아픔을 겪고난 사람이 결국에는 그 동일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참되고 살아있는 위로를 해주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렇게 경험이란 것이 이렇게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구나..생각하니 어떠한 경험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란 생각이 든다. 비록 그것이 전신마비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나의 위대한 통찰이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희망 없음' 이라는 선물이다. 나는 언젠가 내가 꿈꾸던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기약없는 희망을 버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택했다. 사실 이러한 지혜는 '이런 젠장'의 순간이 아니었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구나 하염없는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그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그러나 나중에야, 그리고 운이 좋다면 우리는 과거와 같은 삶을 다시 찾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그 이후의 날들이 우리 인생의 진실임을 알게 된다. (p.139)

 

외로움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춤이다. 우리는 이해받고 싶고 우리가 누구인지 너무 보여주고 싶어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이것이 삶의 근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어느 누구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막연한 공포를 느낀다. 내가 마음을 완전히 열어 보였는데도 거절당하면 어쩌지?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 인생이란 사랑이란, 우리의 마음을 처음에는 나에게,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열어나가는 과정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고아다. 하지만 마음을 열수록 우리는 서로 더 많은 부분에 대해 교감할 수 있다. (p.156)

 

사랑이 언제나 예쁘고 포근하고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간디는 사랑이란 '용기 있는 사람들의 특권' 이라고 말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상처를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날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두려워하게 될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사랑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한결같이 따스하고 편안하기만 한 사랑은 없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p.168)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고 나의 마음을 다잡아 딴 생각 하지 못하게 날마다 내 마음을 토닥이고 있고 세상의 잣대, 어쩌면 내가 세워놓은 그 잣대에 나를 맞추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고 날마다 나를 꾸짖고 책망하는 삶, 그리고 어쩌면 늘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속의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제의  『사하라 이야기』에 이어 오늘의 『마음에게 말걸기』까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려놓음'이며 '자유하기'이다. 더이상 나를 가두지 말고 책망하지 말자. 그리고 닥치지 않은 모든 것에 두려워말자. 책을 덮으면서 나는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상처입었고 그 상처가 아물어가지만 결국 그 상처로 또다시 두려워 할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나임을 알자.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인간이란 것을 나타내는 춤이라 하지 않았던가.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 있나. 모든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인 것을. 이제부터 나는 내려놓음과 자유하기를 위해 한 발작 한 발작 나아가려 한다.

 

존재의 사랑이라는 느낌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평생 동안 계속 연습해야만 느릿느릿 걸어온다. (p.24) 



장애는 내가 지금의 고틀립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지난 30년 동안의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목이 부러졌을 때부터 비로소 내 영혼이 숨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워낙 출발선부터 달랐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만약 이런 사고가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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