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세요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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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는 그 시절, 나에게 보석같은 책이었다. 그래서인지『사랑을 주세요』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 무척이나 궁금했고 그만큼 설레임도 컸다.

 

우리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나만 외롭다고 생각하고 나만 상처입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나와 똑같은 분량, 어쩌면 나보다 더 큰 분량의 아픔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못 본 척 하고 모른 척 할 뿐이다.

 

『사랑을 주세요』 의 리리카와 모토지로. 그들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영혼들이며 자살을 시도하며 세상과 벗하기를 거부한 경험이 있는 상처입은 영혼들이다. 리리카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가족을 통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어떤 냄새인지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고,  모토지로는 자신을 키워주신 양어머니에 대한 의무를 끝까지 다하려는 바른 청년이다.

 

리리카와 모토지로는 서로 얼굴도 모른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면서 서서히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리리카가 모토지로에게 자신의 삶과 아픔을 얘기하며 서서히 자신의 굴레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편지에서 배어나오는 신비한 온기랄까 다정한 느낌, 분별력 있는 마음 씀씀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절절이 느껴져 (p.9) 리리카는 모토지로를 오빠인 듯, 친구인 듯, 때론 연인인 듯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리의 상처는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곪아 터지고 곪아 터져 더 큰 상처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리리카는 모토지로에게 때로는 아버지의 냄새를 맡기위해 불륜을 저지른 자신을 고해성사하듯 얘기하기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절절이 묻어나는 격한 감정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가득 담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리리카는 그 모든 것을 그렇게 드러내면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을테고 잘못된 방향이라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유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리라 생각한다. 원래 상담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내 속의 문제를 다 끄집어 내어 이야기할 때, 또 다른 내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아 가는...

 

모토지로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리리카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때로는 따뜻한 충고를 하면서 그녀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낸다. 모토지로는 우리 모든 상처입은 여자들의 로망이다. 나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내 맘을 어떻게든 토해내고 싶은데 친구들은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채팅을 하면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내 마음을 위로받을 순 없고... 그냥 막연하게 그런 사람이 없을까. 내가 어떤 얘기를 한다해도 묵묵히 들어줄 사람. 그런 사람 없을까.. 를 한동안 찾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되려 하고, 그가 되려고 한다. 이번에는 리리카에게 너무 몰입을 했나보다. 내가 리리카인 듯, 리리카가 나인 듯. 그녀가 그 유부남의 품에서 행복의 냄새를 맡기 위해 수없이 얼굴을 비비고 그의 품을 파고들 때, 나는 그만 아득하게... 먹먹해져 갔고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뿌연 눈물 사이로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고통과도 같은 행위가 끝나고 샤워로 모든 것을 다 씻어낸 뒤, 또 하나의 세계로의 입구, 즉 내 쾌락이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기바 씨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그의 땀 냄새를 맡았어. 두툼한 가슴에 수없이 얼굴을 비비며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나 자신에게 자꾸 되뇌었어. 기바씨의 굵은 팔에 안겨 체크아웃까지 잤어. 마치 아기가 된 듯한 기분으로...나는 한없이 편안했어. 그가 꼭 끌어안고 있는 동안만은 이제까지의 삶의 고뇌가 모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아, 이것이로구나. 이것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아버지라는 존재의 냄새구나.' 굵은 팔뚝, 착한 눈매, 땀 냄새, 저음의 굵은 목소리. 그의 심장 소리를 귀로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나는 자꾸자꾸 어린 아기로 돌아갔어. 어린이집 아기들처럼 천진무구한 세계로. 시간이 되어 호텔에서 나와야만 할 때까지의 그 시간이 정말 너무나 행복했어. 그쯤에서 내 인생이 끝나버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p81~82)

 

나중에 편지가 후반부로 가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만났을 때... 리리카의 그 허망함이 나의 허망함이 되어 나는 그만 멍 해졌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고 모토지로의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그 사연이 밝혀 졌을 때는 나는 그만 그 푸르른 수목원 그늘 아래에서 울고 말았다. 큰 먹먹함으로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사랑을 주세요』는 나에게 또다른 보석으로 다가왔다.

 

리리카는 상처입은 영혼이었지만 세상은 그녀를 상처입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보호받으며 아파했던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가까이에 있었고 그녀는 그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꼭 거쳐야 할 아픔을 겪은 것이다. 리리카는 한없이 "사랑을 주세요."라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져서 다행이다. 그녀의 모습이 상처입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날마다 '사랑을 주세요..' 나지막히 외치는 나에게도 모토지로가 가까이에 있을 것만 같다. 결국은 사랑을 찾고 결국은 이별할 모토지로일지라도 내 맘에는 영원한 모토지로로 남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그야말로 순수한 공통의 시간을 경험했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우리 두 사람은 똑같은 고통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었어. 그래서 펜팔이 끝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훼손되거나 소멸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믿어. 그럼 믿고말고!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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