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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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이어서 읽기 전부터 내 호기심을 끌었고, 기대가 되었던 책이다. 사람에겐 “마음” 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안에 또 다른 자신, 바깥으로 결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이 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은 얼굴이 밝고, 마음이 상한 사람은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은 마음이 곧 나를 드러내는 근원적인 곳이기 때문이겠고,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한 성경의 말씀은 마음에서 모든 선과 악, 모든 죄가 비롯된다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주인공 화자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경위와 그를 따르며 교제하는 내용이며, 2부는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가족 안에서의 주인공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선생님이 남긴 유서의 내용이 편지글 형식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청년은 도쿄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으로 바닷가에서 만난 한 중년의 남자에게 매료되어 그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그의 집에 자주 찾아가 관계를 형성해 간다. 어떤 이에게는 동성애적인 코드로도 해석할 수 있겠으나 끝까지 읽은 내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매력,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흠모로 보였다. 그렇게, 무언가 깊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선생님은 늘 과묵하고, 바깥 세상에는 무심한 듯 냉소적이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일지라도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청년은 그저 존경스럽기만 했다.


“선생님이 갖고 계신 인간에 대한 그와 같은 굳은 생각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냉철한 눈으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현 세태를 관찰한 결과일까. 선생님은 세상을 관조하는 분이셨다. 그렇다면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만들어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 같았다. 선생님의 그 굳은 생각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았다. 불로 달구었다가 차갑게 식힌 석조 가옥의 기둥과는 다른 것이다. 내 눈에 비친 선생님은 한 사람의 사상가였다.” (50쪽)


어느 정도의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서의 외곬수 같은 고집스런 생각은 책과 깊은 생각, 현 세태를 관찰한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철저하게 자신이 경험하고 부딪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운 흔적인 것을. 청년의 눈에 비친 선생님은 냉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상가였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도대체 어떤 경험이 이 사람을 이토록 세상에 비관적이고,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여 고독한 사상가로 보이게 한 것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자네도 예외가 아니었지. 하지만 더 이상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거짓을 말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이거든.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스스로 양심에 한 점 거리낄 것 없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100쪽)


자신의 무심함에도 아랑곳 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청년에게 선생님도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생겼고, 자신 안에 숨겨 둔 비밀을 이 청년에게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고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멈추고, 한참을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단 한 명,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깊은 고뇌로 덩어리진 맘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한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선생님의 마음을 그려 본다면 황폐한 전쟁터, 메마른 땅, 물도 길도 없는 메마른 땅이지 않을까. 그 단 한 명에게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는다는 것은 그 메마른 땅에 물길을 여는 것이 될테다.


“나는 그때 품었던 나의 질투심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네. 이미 몇 차례 언급했다시피 사랑에는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닌다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지. 더구나 다른 사람이 보면 신경도 쓰지 않을 사소한 일에도 그 또 하나의 감정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지. 이건 여담이네만 이런 질투심은 사랑의 반쪽 부분이 아닐까 싶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이런 감정이 점차 엷어져가는 걸 느꼈네. 그와 동시에 애정도 결코 예전처럼 뜨겁게 타오르지 않았고 말이네.” (274쪽)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아버지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와 있는 청년에게 선생님은 유서가 담긴 편지 한 통을 보내고 그렇게 마지막 3부는 편지의 마무리와 함께 끝이 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믿었던 숙부에게서 느낀 배신, 그리고 사랑에 눈 먼 마음에서 불러온 비극이 선생님의 인생을 그토록 비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도록 한 것임을 알게 되는데 유서는 곧 선생님의 참회록이고, 선생님의 마음 그 자체였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성경의 잠언 말씀에도 있듯이, 선생님의 마음에 자리잡은 깊은 원망,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질투와 시기, 사랑하는 이에 대한 욕망은 차츰 자신의 삶을 좀먹었고, 성급하고 그릇되며 지혜롭지 못한 결정으로 이끌었으며, 결국 자신의 삶까지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의 유서를 읽으면서 내 안에서 분연히 일어났던 지난 날의 감정들을 만나게 되었고, 악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데서 오는 많은 어리석은 행동과 결정과 마음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읽는 내내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지글이다 보니 내게 보낸 편지처럼 읽혀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과묵한 선생님의 마음에 오래된 죄책감과 불안한 감정,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면서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무기력과 자신을 향한 불신. 그러한 감정들로 점철된 마음, 그 마음이 이 책의 <마음>이었다.


바닷가에서 청년이 우연히 선생님을 발견하게 되고 급속도로 흠모하고 존경하게 된 것은, 어쩌면 선생님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한 사람에 대한 열망이 그 청년의 시선을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청년을 통해 선생님은 인생을 두고 최선의 참회를 하게 되면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홀가분하게 자신의 죄를 스스로 책임지며 떠났겠구나…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모든 이야기를 다 읽고 그 감정을 다 알게 된 남은 이는 어떻게 될까... 사람의 마음에 분노와 원망, 시기와 질투가 시작되면서 결국 영혼의 사망이든, 육신의 사망이든 끝은 사망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절절하게 아프게 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서 더욱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내 안에 들어오는 욕심, 그 욕심을 다루지 못해 찾아오는 질투와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책을 읽고 나서도 마음으로는 책을 끝내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내 안에 조용히 자리잡으면서 5월의 끝날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의 마지막 장을 겨우 닫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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