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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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을 만한 책 한 권 추천해 달라고 오랜 교회 제자에게 연락이 왔었다. 아이 상황과 성향을 고려해서 다섯 권을 추천해 줬는데 맘에 든다며 다 읽어보겠다고 하더라. 소방관이 되면서 기도로 더 자주 만나는 아이. 현장에서 자부심과 큰 보람을 느낀다는 아이의 진심에 나도,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오늘, 아이가 "죽는 순간까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싶다."로 끝나는 독후감을 보내왔다. 첫 번째로 추천한 책이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였다. 눈이 빠져라 서류를 보고 있던 중에 독후감을 읽으니 눈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뭉클하고, 고맙고 많이 보고 싶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추천해주신 선생님에게 독후감을 보내 드립니다.

폴은 미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했던 어머니 덕분에 폴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의사 아버지를 보면서도 본인은 결코 의사가 되지 않으리라 확신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폴은 '생리적, 영적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의사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의과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의사의 길을 걷던 폴은 레지던트 최고참 시기에 본인의 몸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검사한 결과 본인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치료를 시작하고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의사로 복귀하게 되고 그 사이 사랑하는 아내 루시 사이에서 딸 케이디도 태어난다. 틈틈히 [숨결이 바람될 때] 책을 써가며 치료도 병행한다.그러나 폴의 병세가 악화되고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며 병 치료에 전념하게 된다. 가능한 치료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 치료했지만 더이상 손쓰기 어려워지게 되고 폴은 공격적인 치료방법으로 삶을 힘들게 이어가는 방법을 거부하고 편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기를 원하여 아내 루시와의 대화를 통해 더이상의 치료를 중단하고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기다리며 약한 호흡을 이어가다 얼마 뒤 숨을 거두게 된다. 폴은 본인이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날 소리내어 울고 힘들어하지만 곧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보다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몸이 허락하는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 일을 이어간다. 자신의 꿈,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명 깊었다. 의사이자 환자였던 폴은 죽음과 대면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폴은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친한 친구에게 보낸 메일에서 "폐암에 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라고 하며 본인의 책을 통해 본인의 뜻을 전하고 싶어했다. 죽음 앞둔 사람의 모습에서 우울함과 절망이 아니라 용감함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 용감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고 내가 죽음을 마주하게 될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전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 누구는 분명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그 누구도 아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지않다. 폴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세상을 살아갈 루시와 딸 케이디를 위해 투병하는 내내 그들의 재정적인 면에서나 루시의 경력 면에서 곤란을 겪지 않고 그녀가 엄마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대비했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전해야 한다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배우자일 것이다. 폴과 루시도 다가올 죽음에 대해 각자의 감정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며 뒤의 일들을 준비했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사실을 알리고 하루라도 빨리 내가 없는 삶을 사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배우자를 짝 지어 줬을 때는 이 세상에 살며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알기 위함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의 비밀(기독교에서 영원한 삶을 의미)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 더이상 볼 수 없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겠지만 그 또한 신이 배우자를 짝 지어 준 궁극적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저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는 순간까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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