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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묻다 -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2년 7월
평점 :
어떤 책은 그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컨디션과 마음가짐이 준비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펼칠 수 있는 책이 있다. 내게는 정우현의 <생명을 묻다>가 그랬다. “생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과 “묻다”가 주는 호기심이 내게 좋은 컨디션과 마음가짐을 빠른 시간 내 갖추도록 독려하는 듯했다. 그리고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부딪칠 수 있는 것까지도 염두하고 마음을 준비해야 하니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했음에도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펼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결론부터 얘기해볼까. 정말 가독성이 좋았고, 과학에 깊이가 얕은 나조차도 저자의 치밀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는 걸 발견하곤 했다. 과학에 신학과 철학, 문학과 신화, 예술을 아우르며 질문에 대한 답 또는 이야기를 펼쳐갈 때, 이것이야말로 융합 사고력이구나 감탄할 정도였다.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있어야 할 자리에, 응답해야 할 자리에 적절하게 배치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과학은 생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로 문을 열면서 “생명은 우연인가”라는 질문으로 첫 발을 뗀 저자가 마지막 질문에 이를 때까지 아주 세심하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역사, 그리고 생명을 바라보는 이론이 과거와 현재, 어떻게 실패하고 발전을 거듭해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에 결코 균형을 잃지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질문 또한 아주 전략적이어서 이미 답을 내리고 던지는 질문과 도전하는 질문, 그리고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며 고민케 하는 질문으로 지금까지 좁은 식견에 머무르고 있던 내 생각의 지경을 넓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와 함께 동행하는 독서이기도 하고, 그의 질문 하나 하나에 반응하며 함께 생각하는 독서이기도 하다.
생명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다윈,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 이론과 DNA와 유전자, 생명을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의 한계, 생명을 기계적으로 바라보는 현대과학의 관점, 복제, 노화, 죽음까지 읽을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아주 깊이 있게 펼쳐지는데 정통 분자생물학자인 저자는 과학자 입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생명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함을 인정하며 생명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열 다섯 가지의 커다란 질문 안에서 “생명”이라는 큰 줄기를 관통하며 이렇게 폭넓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학자가 지금까지 있었을까 싶은 것이 과학에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굉장히 즐겁고 신선한 독서 경험이었고, 어디를 펼쳐도 친숙한 과학자와 철학가, 그리고 문학에서 말하는 생명에 관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친절하게 펼쳐지니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과학책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과학자를 만났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참 반갑고 기쁘다.
“생명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189쪽)
“우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밝혀낸 생명의 원리가 모든 생명에게 적용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이 가진 창발성이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녀석이라서, 2 곱하기 2는 항상 4가 아니라, 5나 6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번번이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법칙이라는 것에 얽매이기에는 생명은 너무나 경이롭다.” (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