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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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분노와 원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온전한 기쁨도, 온전한 행복도 누리지 못한 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 함몰되어 간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이가 있어 그이의 품에 안겨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나면 울분이 사라질까.

아내와 딸을 죽인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코뿔소 노든은 길 위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난다. 동물원에서 만난 코뿔소 앙가부, 함께 길을 나선 펭귄 치쿠, 그리고 치쿠를 대신하여 노든의 곁을 함께 한 어린 펭귄까지.

함께 길을 떠나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힘을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내내 마음이 뭉클했는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삶의 꼭짓점마다 나타나 사랑과 관심과 기도와 도움을 주었던 인연들이 생각났다,

노든이 펭귄 치쿠와 어린 펭귄을 통해 살아갈 이유를 깨닫고 소리 없이 울 때,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서 한동안 목이 멨다. 분노와 원망과 미움은 남을 죽이고 싶게 하고, 내 영혼을 죽게 하지만 그 마음을 내려놓을 때 찾아오는 평안은 다시금 힘차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어린 펭귄이 노든을 떠나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바닷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은 노든의 존재와 끝까지 자신을 품어 주었던 윔보와 치쿠가 아니었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임을 보면서 홀로 나만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반쪽짜리 삶인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작인 루리의 <긴긴밤>은 내게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했고, 감사한 인연들을 다시금 떠올려 주었고, 지금의 나 또한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님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면서 겸손하게 했다.

읽는 내내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한 명씩 떠올려 보기도 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마음이 순해진다. 그런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순해진 마음이 내게만 머물지 않고 내가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순한 마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흘러가기를 소망해 본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99쪽)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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