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을 읽은 지가 언제였나 싶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 날, 외롭지 않은데 외로운 날. 그리운 사람은 없는데 그립고, 따뜻한 품이 아쉬운 그런 날. 


책 좋아하는 사람은 또 외로움과 아쉬움을 책으로 달래야지 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고른 책이 전경린의 <이중 연인>이다. 아... 읽고 나서 더 외로워졌다. 읽고 나서 더 사랑이 고파졌다. 외롭고 아쉬운 날은 연애 소설이 아니라 이성적인 감각을 마구 깨우는 인문과학 책을 읽었어야 했다. 정말 그랬어야 했다. (꼭 메모해두자.)


주인공 수완과 그녀에게 약간의 시차를 두고 찾아온 두 남자 이열과 황경오와의 사랑. 그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도 알겠고, 그들의 심연의 깊이를 헤엄치다 나는 더 외로워졌다.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 


오늘은 집에서 오랜만에 월드콘을 "할짝할짝 핥으며"(너무 상투적인데 이런 표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오랜만에 찾아온 이 지독한 외로움을 즐겨야지. 그것만이 이 외로움의 터널을 지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완전히 전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완전히 솔직하려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 사람 자체의 감각과 인식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한계 안에서조차, 선해서든 악해서든, 사랑 때문이든 미움 때문이든, 사람은 저마다 마지막 카드를 숨긴다. 그것은 타인이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의 주체가 차마 손댈 수 없는 또 다른 주체의 존재 이유가 있기에. (144/360)

사람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이 새삼 심오하게 느껴졌다. 이름은 일종의 트렁크니까. 사람들은 자기 이름 속에 경험과 기억과 꿈과 소망, 능력과 한계와 비참과 고통을 수납한다. 불행과 행복을 담고, 걸어 다니고, 밥을 먹고, 어둠 속에서 누워 잠을 자고 깨고, 그리고 마침내는 운명을 걸어 닫고 이름 속에 영면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기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사물들의 이름을 바꾸고 언어를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 (20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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