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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박완서 외 지음 / 한길사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조지 버나드 쇼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을 걱정한다. 매 끼니를 걱정하는 것은 엄마들의 숙명이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의무적으로 음식을 만들게 된다. 음식을 할땐 꼭 엄마 생각을 한다. 늘 바빴던 부모님들의 뒷모습만 보고 자랐지만, 따뜻한 밥을 먹고 컸다. 그리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따뜻한 밥 한 공기는 부모님의 사랑법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보다 더 많은 기억을 남겨 준 밥에 관한 기억들이 엄마가 되고보니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도 엄마라면 어떤 음식을 만드셨을까하는 생각을 먼저하게 된다. 음식은 맛 뿐만이 아닌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일종의 페이소스이다. 저마다 다른 기억으로 저마다 다르게 각인되어 가슴에 깊은 기억을 남기는 향수같은 것.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내노라하는 열세 명의 작가가 담아 낸 맛의 기억들이다. 11년전의 책을 재간한 것이라 지금과 더 정겨운 아날로그 정서가 물씬 느껴진다. 작가들이 좋아하거나 기억되는 음식은 작가들의 글에서 보여지는 느낌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딘가 모르게 한식예찬주의 같았던 박완서 작가의 메밀칼싹두기와 수수팥떡, 참게장,강된장과 호박잎쌈은 한국적인 이미지였던 작가의 담백함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최일남 작가의 '전주비빔밥'이 그러했고 '엄마를 부탁해'를 쓴 신경숙 작가에게도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어머니의 음식이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음식 가운데 어머니를 빼고 기억 될 수 없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성석제 작가가 꼽은 잊을 수 없는 음식 중 '묵밥'은 경상도에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서울에서는 본적도 없었던 묵밥은 어느 날, 동네 어르신들이 밭일을 끝내신 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참으로 묵밥을 드실 때, 우연히 지나가다 붙잡혀 먹게 되었다. 처음 먹어보는 묵밥은 정말 맛있었다.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며 참기름의 고소함과 양념간장의 짭쪼름한 맛이 감칠맛을 더해주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이후 장이 서는 날이면 묵밥집을 찾아가 한 그릇씩 꼭 먹고 온다. 하나같이 가게이름은 '원조묵밥'이 붙여있는데 어느 집을 가도 묵밥은 다 맛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경상도의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묵밥이라 대답하게 될 것 같다.
요리의 시대같다. 텔레비전을 틀면 요리하는 프로그램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과거 요리 프로그램과 다른 건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요리 프로그램이 '쉐프'라는 근사한 남성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쉐프로 바뀌면서 과거 한식요리에 한정되어 있던 요리들이 소소하고 편안한 먹거리 위주의 음식들로 대체되었다. 어쩌다 늦은 밤 채널을 돌리면 나오는 먹거리들의 향연은 미각을 기억하는 침샘에 침을 가득 고이게 하고 잠들지 못하는 위장을 깨워 고문을 하기 때문에 요리 프로그램은 부러 찾아 보진 않지만,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데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의 가장 원초적인 맛은 뭐니뭐니해도 엄마와 같이 푸근한 인상의 여성에게서 나오지 않을까한다. 음식은 각자에게 기억되어 있는 정서에 따라 '어떤 맛'이 결정된다. 늘 간이 맞지 않아 투덜거리던 어린 시절의 밥상머리 기억은 저만치 사라지고 이제는 밥상머리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을 보니 그렇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누구에게나 페이소스로 남겨져 있는 기억의 맛이다. 오늘도 숙명처럼 밥 지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