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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부커상 수상작이었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의 대표작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을 때 장마철이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몹시 지루했고 우울했다. 그리고 그의 책은 더디게 읽혔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에 슬슬 짜증이 밀려올 찰나 책은 끝이 났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안도가 아닌 아쉬움이 더 컸다. 다시 앞페이지부터 읽어야 했다. 분명 지루했는데 나는 왜 앞페이지를 다시 넘겨야만 했을까. 어디선가 놓쳐버린 작은 단서가 숨겨져 있는 행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용감한 친구들1>도 그에 버금가는 뒤통수다. 분명 다 읽었는데 놓쳐버린 무언가가 있다.
‘작가란 무엇인가2’에서 서평가로 유명하신 이현우의 추천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작가란 단지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지만 창조적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신이다.’ 작가에 대한 지나 신격화 같은가? 아니다. 이 추천사로서 나는 작가를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글을 쓰는 사람과 하나의 세계를 완벽한 신세계로 창조하는 신으로 , 여기서 줄리언 반스는 물론 후자이다.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우리나라에서조차 ‘추리소설의 절대 고전’으로 불리는 셜록 홈즈를 창조한 작가 아서의 신세계가 펼쳐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제국주의 중심에서 많은 식민지를 거닐었던 영국은 세계 최초의 산업국가로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산업혁명으로 인해 엄청난 부가 축적되며서 신분 계급이 바뀌고 있던 과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인종차별 역시도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인종차별은 영국에서 가장 심한 사회문제였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20세기는 ‘그레이트 웨얼리 잔학행위’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조지와 아서, 세기의 만남이 소설처럼 이뤄진다.
소설의 시작 역시도 조지와 아서의 일대기가 교차되며 서술된다. 에든버러의 아서는 화목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가정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유아기를 보내고 시골의 목사관에서 엄숙하고 절제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책임감 있고 성실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답답해 보이기도 하는 조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두 가정의 대조적인 분위기 그대로 아서는 모험심 많은 외과 의사가 되고 조지는 목적이 이끄는 삶에 걸맞는 사무변호사가 된다.
조지는 날마다 기차를 타고 버밍엄으로 오는 과정이 만만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여행길에서 위안을 느낀다. 목적이 이끄는 여행, 조지는 삶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도록 배웠다. 집에서는 하늘나라 왕국이라는 목적을, 사무실에서는 정의라는 목적을, 다시 말해 고객에게 성공적인 결과를 제공한다는 목적을 추구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규율이 엄격하였던 목사가정에 닥친 협박은 조지가 사무변호사가 되어도 계속되지만 경찰은 도리어 조지를 의심하는 경고장을 보낸다. 조지의 아버지는 파르시(인도에서 넘어온 조로아스터교도) 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가 매일 기차로 출근하는 인근 지역에서 가축이 잔인하게 도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 여의사가 실종되자 조지는 억울하고 멍청하게 가축 연쇄 살해범이라는 누명으로 체포된다. 이후 조지는 법과 정의가 자신을 기망하는 모습을 여러 재판을 통해 무참히 바라봐야했고 결국 영국으로부터 징역 7년이라는 배신의 도장을 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아서에게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고 ‘홈즈’를 창조하여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행복이 절정이 달하였을 때 찾아 온 아내의 시한부 선고로 아서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했다. 자신의 부와 명성대신 아내의 삶을 망가뜨렸다는 자책이 그를 따라다닌다. 아내를 만난 후 다시는 뛰지 않을 것 같았던 심장이 아름다운 여인 '진'을 만나면서 다시 뛰게 되자, 책임과 의무, 자신의 창조물 셜록 홈즈마저 행간을 부유하는 텍스트로 전락한다.
두 사람의 일대기를 교차하며 진행되는 서사구조를 통해 하나의 나라 영국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비교하게 된다. 자유롭고 호방한 아서를 영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한다면 젠틀한 사무변호사 조지는 파르시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7년이란 세월을 감방에서 보내야 했던 사회의 희생자이다. 이 모순 가득한 사회적 간극은 '아서와 조지Arthur&George'의 만남으로 좁혀질 수 있을까?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지나친 행간에 혹시 내가 읽지 못한 무엇이 더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게감이 남는 소설이다. 추리 소설을 능가하는 긴장감과 재판 과정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는 조지의 심리묘사, 작가로서 셜록 홈즈에게 갖는 정체성 갈등을 통해 실화보다 더 생생하고 리얼하게 아서의 신세계를 창조한다. 《용감한 친구들 》1권은 시작에 불과하다. 둘의 만남은 2권에서나 이루어질터.
지금, 세계는 마침내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관계-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물 사이의 관계, 생각과 원칙 사이의 관계-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