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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조선 왕들이 의외로 오래 살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 가장 유력한 것이 독살설이었다. 이덕일 님의 [조선 왕 독살설]을 읽으면서 독살설은 꽤나 신빙성 있게 들렸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리고 가장 안타까워 했던 독살설의 주인공을 꼽자면 정조와 경종, 소현세자, 효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선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현명한 왕들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분명 왕에게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자 곧 나라 그 자체였던 조선의 왕은 거의 단명했다. 태조를 시작으로 하여 고종까지 오백년이 넘는 조선역사에 50년을 넘게 재위한 왕은 영조가 유일무이하다. 유일하게 영조가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하였지만, 서자출신이라는 꼬리표와 당쟁이라는 권력의 이전투구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의 몸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재탐구하는 책이다. 흔히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하듯이 승자의 시선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 왕의 지극히 은밀한 부분이었던 사생활과 사람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색다른 프레임의 역사서이다. 한의사인 저자는 환자의 몸에서 삶을 읽어내듯이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남겨져 있던 삶의 흔적들이 병이 된 연유를 한의학이라는 돋보기로 보았을 때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띠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다.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왕의 몸과 질병의 기록을 한의사의 눈으로 응시하는 작업을 왕의 한의학이라 부를 것이다. 왕의 한의학을 통해 왕의 몸과 병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올릴 수도 있다.
왕의 몸을 통해 읽는 조선 역사는 실로 흥미로운 것이 많다. 한글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학질과 소갈병, 다리의 부종, 안진 , 임질, 풍질, 강직성 척추염을 앓다가 중풍으로 사망한 세종의 몸은 한 개의 병이 나으면 또 다른 병이 찾아오곤 하였다. 즉위하자마자 아버지(태종)와 어머니의 불화는 날로 심화되었고, 외삼촌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이어 장인의 처형과 장모의 노비전락과 이어진 국상으로 세종의 몸과 마음은 고통으로 유린당한 상태였다. 재위 초부터 시작된 상례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는 결국 몸에 병을 불러왔다. 이렇게 한의사인 저자는 환자가 살아온 삶의 흐름과 이력이 질병의 함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의학적 견지로 조선의 역사를 이해한다. 한의사는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이유를 되새기면서 환자의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여 처방을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마치 환자와 만나서 환자의 삶을 이야기 하듯 조선왕의 몸과 역사가 하나의 궤를 같이 하여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조선의 왕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왕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었으며 왕이기에 앞서 아들이며 왕이기 전에 남자였기 때문이다.
왕의 독살설 중에 가장 신빙성있게 비춰졌던 경종의 '게장과 생감'에 대하여 저자는 독살설이라기 보다는 경종의 병약한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사에서 살펴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데다가 평소 간질과 비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었던 병약한 몸이 게장과 생감을 소화할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종의 병약함을 보면 게장과 생감이 죽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게장과 생감이 독을 만드는 조합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광해]에서는 왕이 매화틀(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 나인들이 뒷처리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러니 조선 왕들이 오래 못 살았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 같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명의 왕 중에서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한 영조가 유일무이한데 저자가 꼽은 영조의 건강 비결이다.
첫째. 자기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둘째. 자신에게 어떤 처방이 맞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셋째. 강한 의지를 가지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했다.
겨우 50세를 전후해서 생을 마감한 다른 왕에 비해서 영조는 정신적으로도 강했던 왕 같다. 태조나 태종, 세종, 문종, 세조 등 조선 왕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종기와 소갈병을 달고 살다 종기나 질병으로 사망한 것과 달리 영조는 자잘한 병을 앓긴 했지만 노환으로 죽었다. 다른 왕에 비해서 비교적 건강하게 돌아가신? 편이다. 그렇다고 다른 왕들이 의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세종이나 문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숙종, 정조 등 의학적 지식이 해박했던 왕들도 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의 왕중에서 병으로 신하들이 간언하는 기록은 있지만 영조처럼 자신의 몸을 관리하였던 왕의 기록은 없는 듯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했던 왕은 영조가 유일하다. 대부분 조선의 왕이 독살당했다는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조선 왕들의 독살설은 당쟁이라는 권력의 이전투구가 낳은 설이지 독살설의 대부분은 의료 기록에 대한 오독이나 무지의 결과라고 한다. 당시 시대상으로 중증 뇌일혈과 같은 질환은 외과적 대처가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약을 내려도 죽지 않아 조광조 같은 경우에는 독한 술을 마시게 하여 죽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 오히려 독살은 성공하기 힘든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의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의의도 있는 책이지만 조선의 역사를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를 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공자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