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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보의 대표적인 지식인 조국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해결해야 할 숙제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 들어서면서 정치와 경제는 블랙홀에 빠진지 오래고,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으로 인한 불평등심리는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 한다. 시민들의 분노는 방향을 잃은지 오래고, 젊은이들은 꿈보다 좌절을 먼저 경험하는 시대다. 며칠 전 경향신문의 인터뷰에서 김영하는 '젊은이조차 이전보다 잘 될 거라는 희망 없이 사는 시대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면이며 전시 상황 같다' 고 하였듯이 우리 시대는 탈출구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처럼 방향 잃은 분노를 심어주고 있는 작금의 정치문화에서 '공부'를 외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공허한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삶의 척박함은 공부를 허울 좋은 유토피아이자 비현실적 몽상으로 치부되기에 우리는 점점 더 공부와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매순간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중심이 없으면 칭찬과 환호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오늘의 칭찬과 환호는 내일 뒤집어질 수 있다, 한순간에 비난과 경멸, 야유와 조롱으로 바뀔 수 있다.그만큼 달콤하지만 영원하지 못한 것이 바로 주변의 시선이다, 중심을 유지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한다. 내 삶의 두 축은 '학문'과 '참여'다.
책은 저자가 공부에 대한 매력을 깨우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공부를 좋아하게 된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과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몰입과 열정이 한 쌍의 수레바퀴가 되어 재미라는 동력을 달아야 몰입의 성취도를 느낄 수 있으며 한 번 몰입의 성취도를 깨닫고 나면 또 다른 성취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을 찾는 것이 공부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이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면서 사회주의 '사노맹'에 가입하면서 구속 수감 된 후 그 안에서 깨달았던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와 베를린 유학시절 배우게 된 'Kill your father'이라는 경구가 열어준 '반권위 정신'으로 자유로운 학문정신과 사고의 유연성을 터득하게 된 일화를 들려준다. 계속 된 공부를 통해서 사람과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정립할 수 있었다. 저자는 법에 닥친 긍정적인 변화에 주목하며 명판결의 예를 통해 다수의 시민들 목소리가 담긴 법을 만들고 제대로 그것이 집행되는지 감시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적 순간은 이성으로는 억지할 수 없는 강한 감성의 힘이 자신을 지배할 때다.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그 무엇, 배꼽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런 감정적 떨림 없이는 잘못을 인지하고도 행동하지 못한다, 지식 습득을 통해 머리로 깨닫는 것, 가능하다. 그로 인한 변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가슴 떨림과 만나야 '또 하나의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공부는 이런 것이 아닐까?
칠십이 넘으셨음에도 항상 공부하시는 어머님은 나의 멘티시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축복받은 삶이 있다면, 그것은 공부하는 삶이라 했다. 나는 삶에서 찾아오는 시험과도 같은 고난앞에서 공부가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정치와 사회 분위기가 혼란한 가운데에서 냉철한 이성과 변별력은 공부를 통해 얻을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사회에서 상위 몇 프로에 해당되는 엘리트급이라 할 수 있는 조국의 공부가 일부 배부른 이들의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조국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삶을 통해 얻은 공부의 정수를 이 책 한권으로 가장 쉽고 빠르게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한 보편적 조망을 통해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에 대한 궁극의 물음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삶을 향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남겨주고 있다. 이미 나의 인생에 공부라는 돛은 내려졌고 삶이라는 바람은 불어오기 시작하였으며 그 여정에서 삶 앞에 산적해 있는 자유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부는 계속 될 것이다. 나의 어머님처럼.
* 조국님의 멋진 말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재미난 것, 즐거운 것, 신기한 것, 의미 있는 것, 영감을 주는 것들이 매우 많다, 이런 것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것을 체험하게 하는 제도와 문화가 너무 취약하다, 정해진 트랙만 뱅글뱅글 달려야 하는 경주마로 살면 푸른 초원 위를 달리는 야생마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뭔지 알아야 공부의 목표가 분명해지고 그 과정에 신이 난다,
아이에게 하나뿐이 인생이 온전히 자기의 것이라는 것, 충분히 다양한 색채로 삶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가르쳐주고 싶다.
자본주의가 온갖 모순을 그러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등사상’은 여전히 소중하다. 이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알랭 바디우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평등한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고민이다.” 라고 하지 않았는가.
냉전, 전쟁, 분단으로 과잉우경화 되어 있는 정치지형을 생각하면, 사회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우리 사회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과학적 진리와 윤리적 당위라는 뒤섞을 수 없는 두 개의 영역을 마구 섞어버리는 ”마르크스의 편향은 극복해야 한다, 언어학자 출신으로 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론적., 실천적 기반을 닦은 에른스트 비그포스스의 관점을 빌리면, “사회민주주의의 도래는 입증되고 말고 할 과학적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윤리적 당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삶에서 실천으로 구현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잠정적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이를 일상 정치와 결합시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성적을 위한 것이든 , 먹고 살기 위한 것이든 , 세상을 알기 위한 것이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엇으로 먹고살건, 공부 할 때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 공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