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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축구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지라 월드컵에 광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축구의 마력을 알게 해 준 사건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던 2002년도에 일어났다. 당시 명동에서 근무했던 나는 퇴근길에 우연히 시청 앞거리를 지나다가 월드컵에 미친 인파들에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다. 미친 듯 환호하는 물결사이에 오로지 집에 갈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었던 나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결국 월드컵 응원 인파에 떠밀려 시청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정신줄 놓는 황홀한 경험을 하였으니 대형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들의 매혹적 움직임을 통해 전해지는 활력은 그야말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몽롱한 축제였다. 그때 경험한 축구는 영원히 잊지 못할 스포츠이자 거역하지 못하는 유혹이었다.

 

축구는 신을 잃어버린 20세기 인류가 창안해 낸 새로운 종교다. -장석주의 일상의 인문학 ()에서-

 

그 황홀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축구가 종교라고 하는 장석주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유럽에서 전파한 축구라는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축구장은 거룩한 성전이 되고 관중은 예배를 드리러 오는 성도로 변한다. 운동장을 누비는 축구 선수들은 그대로 영웅이 되어 그가 착용한 모든 것들이 자본이자 상품이 된다. 축구 선수들의 몸값은 수억을 호가하고 축구장을 메운 전광판에는 수많은 광고용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교주이자 신은 축구연맹(FIFA) 회장 제프 블라터이다.

 

피파 마피아는 국제축구연맹의 부패실상을 낱낱이 파헤침과 동시에 제프 블라터를 본격 디스하는 책이다. 38년 동안 이 거대한 피파를 지배해 온 블라터의 막강한 권력과 마피아를 연상케 하는 거대조직을 집중 탐사한 책으로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는 20년째 피파의 범죄를 목도한 베테랑 기자이다. 그가 들려주는 피파의 실상은 세계가 환호해 마지 않는 월드컵에 대한 환상을 마구마구 깨어줌과 동시에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블라터의 탐욕과 음모와 권력의 이전투구 현장을 가감없이 전달해준다. 심지어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순간을 만들어 주었던 한일월드컵 역시도 블라터의 권력정치의 하나였다는 것.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는 권력정치의 이해득실로 인한 피파의 강권에 따른 결정이었으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2022년 사막 한복판에서의 불가마 국가 카타르에서 치러질 월드컵 개최에도 블라터의 음흉한 계략이 뻗쳐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코카콜라, 펩시, 아디다스, 소니, 삼성, 나이키, 에미레이트 항공과도 같은 광고주들이 피파에 벌어다주는  광고수익으로 점점 더 불거져가는 블라터의 '갑질'에 엄청난 반감을 느끼게 한다.   

     

월드컵에 모든 걸 걸고 미래를 담보로 하는 투기는 말 그대로 숨 막히는 전쟁판이다. 돈과 명예를 걸고 악다구니를 쓰는 싸움판, 이게 바로 피파의 현주소다.

    

정치는 현대의 숙명이다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던가.  책을 읽으면서 작년 이맘때 천만 관객을 동원한 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설국열차에 대한 단상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세상에서 마지막 생존자들이 오른 열차 안에서조차 계급과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생존의 사투를 벌인다. 마치 이들은 숙명처럼 절대 권력에 굴복하고 생존을 위해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며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를 나눈다. 이 설국열차를 지배하는 교주 역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제물 삼아 설국열차의 엔진을 가동한다. 자본주의의 거대 문명의 순환처럼 피파라는 거대 기업 역시도 이 설국열차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절대 교주인 블라터의 권력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엔진은 축구 선수들의 어마무시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월드컵으로 가동된다. 이 월드컵이 멈추지 않는 한, 피파 열차는 절대 멈추지 않으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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