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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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있어요.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사랑은 둘의 경험이라고요.  

《꽃들은 어디로 갔나》의 저자는 이런 말을 해요.

사랑이란 타인 속에서 내가 죽는 것이다. 라고요.

전 사랑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사랑이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둘의 경험에서 파생된 깨달음에서 사랑이 오기 때문이죠. 그러고보면 알랭 바디우가 말한 '사랑은 둘의 경험'이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강신주의 다상담 1> 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타인을 알아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면서 타인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 '사랑의 비밀'이라고요.

 

 소설가 김동리의 세 번째 부인의 자전적 소설인 <끛들은 어디로 갔나>에는 이 사랑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현대식 사랑법과는 다른 느린 걸음의 사랑을 주인공 '호순'을 통해 보게 됩니다. 김동리 선생님의 개인사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유추해 볼 수 있는 실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화자인 '호순'역시도 작가 본인이 투영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사랑이라는 '둘의 경험'이 매우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법한 달달함이나, 풋풋함, 가슴떨림 같은 두근거림은 없습니다. 애초부터 둘의 사랑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호순의 사랑은 그야말로 알아서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번쩍하는 운명의 장난으로 사랑에 빠졌고 그제서야 남편을 알아가는 사랑에 빠진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여자에게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었지만 남편에게는 이미 첫 번째도 아닌 두 번째 부인과의 외도가 있었습니다. 사업기질도 있었고 소설가이기도 한 두 번째 부인이 있었음에도 사랑에 빠진 30년 차이의 제자와의 사랑. 두 번째 부인은 암투병 중에도 '아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그런 두번째 부인이 사망한 후, 연인이었던 호순이 아내의 옷을 입습니다. 30년이라는 나이차를 뛰어넘을 정도로 사랑했던 남편은 이 아내의 옷을 입는 순간 ,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남편은 온데간데 없고 쭈글망탱이에 마이다스 증후군을 가진 욕심 많고 인색한 노인의 모습을 한 남편을 보게 됩니다.

 

그녀에겐 라는 사람 자체가 보물이었으므로, 그 이상의 것을 탐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지금 그녀 앞엔 마이다스 증후를 가진 욕심 많고 인색한 한 노인이 있을 뿐이었다.‘

 아내로서 살아간다는 것,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로서 그녀가 바라보는 삶의 형체는 서시히 두려움의 존재로 변질되고,  사랑의 흔적이라고는 전처가 좋아한다던 고양이 한 마리와 잡다한 수집욕에 몸을 맡겨버린 늙은 남편이 결혼생활이 알려주는 현주소임을 절감할 수록 고독과 외로움이 그녀를 침잠해 갑니다. 그런 젊은 아내를 보던 남편은 폭력과 집착에 물들어갑니다.  

 

삶이 참 두렵구나.’

그것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명치를 겨누고 있는 깔끝처럼 단호하고 용서 없는 어떤 것이 자기 삶으로부터 불쑥 모습을 드러낸, 그런 것이었다. 돌이킬 수도, 피할 수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은, 오직 치러내는 길 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 두려운 깨달음.

 

   

사랑이 주는 이상과 결혼이라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을 예민한 감성으로 직시하고 있는 문장들은 주옥같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너무 빠르게 오고 타인에 대한 이해는 너무 더디고 느리게 오기에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곤 하지요. 세 번째 부인의 지난한 세월을 관통하는 운명같은 사랑이야기를 엿보며 가끔씩 멍해지곤 했습니다. 사랑이 둘 만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때 그 삶을 관통하는 '타는 사랑의 이야기'는 희붐한 새벽의 여명처럼 고독하고 여린 빛을 띱니다.  삶은 화무십일홍이요, 인생은 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다 지기전에 사랑의 비밀을 되새김 해보며 나의 사랑을 알아가야겠습니다.  그녀의 사랑에 비해서는 제 사랑이 너무도 작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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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9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4-04-0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사랑은 막상 손에 넣으면 신기루와 같아서 사라져 버리겠죠~사랑에 빠지기 보다 유지가 더 어려운것 같아요~^^

드림모노로그 2014-04-16 15:25   좋아요 0 | URL
그렇죠 ㅎ
사랑하긴 쉽지만,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것 맞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어르신들의 금강혼식에 다녀왔는데 깨닫는 것이 많았습니다 ^^

착한시경님,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행복한 봄!! 보내고 계시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