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 공간 -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
오근재 지음 / 민음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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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늙어가는 기분을 말한다면 이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새해를 맞이한 기쁨은 잠시 한 살 더 먹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노쇠한 육체, 가령 움직일 때마다 녹슨 철마냥 삐걱거리는 뼈소리나 아침마다 발견하게 되며 놀라워 하는 흰머리, 나이테처럼 깊게 패여가는 주름살과 동시에 툭 튀어나오는 똥배를 이겨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슬픈짐승/모니카 마론)의 표현처럼, 늙어도 우아하게 늙고 싶었던 나로서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노화의 자화상'이다. 너무도 빨리 시간의 화살을 타고 온 '늙음'이 이토록 슬플수가 있냔 말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 필연적인 일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는 일. 나이가 들고 신체가 노쇠해지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변화를 감지하게 되는 일. 자신이 더 이상 현역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지난하게 이어지는 인생을 살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일. 그리고 고독과 친해지는 일.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고독의 시간이 결국 내 몫이며 내가 겪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p7

상품가치가 떨어진 제품들은 쓰레기로 분리수거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똑같이 물화되고 상품화 된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인간 역시도 시장경제의 중심에서 시장 변두리로 분리 수거 된다. 여기서 등장하게 되는 공간개념이 '퇴적 공간'이다. 강 하구 부근에 모래와 자갈이 쌓여 하나의 지층을 이루며 모래톱을 만들어내듯이, 고령화로 인하여 경제의 중심에서 변두리라는 특정 공간에 모여 층위를 이룬 공간을 이르는 말로 저자의 표현이다. 《퇴적 공간》은 저자의 생생한 르포형식의 인문학으로써  한국사회의 '고령화 현주소'를 탐사한 책이다. 철학과 역사, 예술, 종교에서 삶과 죽음에 천착하여 얻어내는 인간 존재에 대한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차원 높은 인문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안에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의 테두리에 대한 사유와  이 시대에 '노인'이 떠안은 구조적인 불행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인간은 동식물이나 사물과는 달리 주체와 객체가 항상 명확하게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임산부가 될 수 있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으며, 시간이 흘러 자본주의 시장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교환 가치가 떨어진 노인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두가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라는 것이다.

 

 UN이 규정하는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퍼센트를 넘는 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인 한국에서 노인 문제는 더 이상 감추기 어려운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작년 한국과 일본의 노인 복지 정책 예산안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이 노인복지에 투자하는 비용의 십분의 1정도가 우리나라 노인 복지 정책 예산이라는 부분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게다가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과의 세대 불신은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대간의 격차를 부추기고 있는 또 다른 하나가 현행하고 있는 '맞춤형 복지'의 구조적 문제이다. 이 맞춤형 복지 슬로건 이면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상품화'로서의 인간이라는 무서운 함의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인들이 비록 시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잉여라는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노인이라는 사유의 회복이 먼저이며 고독과 소외라는 사각지대에 선 노인들을 위하는 복지 개선은 노인에 대한 구조적 인식에 대한 차이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설파한다.  저자의 '늙음'에 대한 천착은 시장경제의 중심에 있다가 변두리에 물러나게 된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 있어 더욱 실감나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사유들이다. 잉여와 소외된 집단으로서 사회에서 한 층위를 이루고 있는 노인들의 퇴적 공간을 통해 '죽음 의식을 지니고 있는 개인의 삶은 언제나 가치 있다'는 보르헤적인 관점으로서의 삶을 재정비해주는 안내서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 결코 비켜나갈 수 없는 '늙음'을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이 책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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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2-2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은 사람이 되기 앞서 모두 젊은 사람이었고,
젊은 나날 이들이 일하면서 아이와 '예전 늙은 사람'을 살찌웠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젊은 사람이 아이와 '늙은 사람'을 돌보려 하지 않으면,
오늘날 젊은 사람이 앞으로 '늙은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이궁.

드림모노로그 2014-02-25 09:47   좋아요 0 | URL
우리 세대가 가장 힘든 시절이지 않을까요.
고령화 진입의 첫 세대니까요.
백세 시대라고 하는데,,,
앞으로 어떤 '老'의 시대가 올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이궁 .. ~

2014-02-2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5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