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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평점 :
작년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감동과도 같은 소설이다. 성경,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전 세계 독자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두 도시 이야기》는 읽는 내내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휴잭맨을 불러낸다. 지적이고 감성 가득하며 선한 시민의 모습으로서 말이다. 두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아버지-약혼자-딸이라는 삼각 구도가 레미제라블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프랑스혁명이라는 뿌리만 같을 뿐 뿌리에서 자라 역사와 혁명,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은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두도시 이야기]는 혁명과 사랑과 역사가 너무도 조밀하게 연결되어 이들을 따로 떼어내어 생각하기 힘들다는 점과 빅토르 위고의 ‘혁명’은 보다 진취적이고 시민의 삶을 대변하는 피끓는 역사를 대변하고 있지만, 찰스 디킨스의 혁명은 ‘혁명’의 시대 자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두 소설이 같은 듯 달라보이는 점이다. 두도시 이야기의 유명한 첫 문장에서 말하듯이 이 소설은 시대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려버린 한 인간의 슬픈이야기이자,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게,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18세기,프랑스는 루이 15세에서 루이 16세로 바통을 이어가고 있었고 영국은 찰스 1세에서 찰스 2세로 이어지는 세대교체기를 맞았다. 런던과 파리, 이 두 나라의 수도는 서로를 경쟁하며 견제하느라 바빴지만 너나없이 혼란한 시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추위와 더러움과 빈곤이 내려앉은 프랑스 뒷골목에서 구두 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노인은 바로 이 시기의 혼란스러움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불쌍한 주인공이다. 한때 존경받던 의사선생님이자, 지적이고 선량하며 바른 신사였던 마네트 박사에게 닥친 불행은 소나기처럼 예고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귀족의 만행을 목격하고 고발하려 했다는 이유하나로 납치 된 후 악명높은 바스티유 감옥 ‘북탑105호’에 감금되어 강제노동에 길들여진 마네트 박사에게 남아있는 것은 절망과 고통, 망각이라는 강에 몸을 맡긴 채 구두를 만드는 것만이 전부인 삶이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돌봐주던 술집 주인 드파르주는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시민들의 중심이였다. 마네트 박사의 재산관리인인 프랑스 텔슨 은행의 직원 로리는 죽은 줄 알았던 마네트 박사가 석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런던에 있던 마네트 박사의 딸 루시를 데리고 파리의 뒷골목을 찾는다. 아버지를 런던으로 모셔오면서 우연히 배에서 만난 남자 찰스 다네이가 영국의 적이자 미국의 친구라는 오명을 받고 재판을 받게 되자 마네트 박사와 루시는 찰스의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 재판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은 '찰스와 변호사 카턴, 스트라이버'로 이들과의 만남은 루시와 마네트 박사의 남은 생을 써 갈 주인공들이다.
‘뛰어난 능력과 선량한 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며, 자신을 파먹는 해충인지 알면서도 그 해충이 자신을 먹어치우도록 보고만 있는 ’남자 변호사 카턴은 루시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프랑스의 귀족이지만 귀족들의 삶에 환멸을 느끼며 신분을 숨긴 채 영국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생활하던 찰스 다네이 역시 루시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반하여 남몰래 사모하는 마음을 움트고 있었다. 루시를 동시에 사랑했던 이 두 남자-카턴과 찰스-는 '루시'라는 여인을 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더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카턴과 찰스가 쌍둥이처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다. 찰스와 루시가 결혼하던 날, 카턴은 루시에게 목숨바쳐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스포일러 !)
프랑스의 귀족인 찰스가 신분을 숨기고 런던에서 행복한 삶을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 프랑스에서는 찰스의 숙부인 에브레몽드 후작이 농민들에게 암살되고 찰스의 옛 하인이 투옥되자, 하인을 구하기 위해 행복한 삶을 뒤로 한채 태생에 이끌리는 자석바위처럼 운명에 끌린 찰스 다네이. 프랑스에 가면 기껏해야 심판이나 재판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에브레몽드 후작의 조카라는 사실만으로(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다. 사위의 소식을 들은 텔슨 은행원 로리와 마네트 박사, 루시는 찰스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넘어오고, 사위의 석방을 위해 그리고 딸의 행복을 위해 마네트 박사는 바스티유 감옥과 군중들을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한다. 마네트 박사의 희생으로 찰스는 석방되지만 이내 다시 투옥되는데 이 장면에서 마네트 박사와 사위 찰스의 얽기고 성긴 관계의 실체가 군중 앞에서 까발려지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네트 박사로 인해 풀려나지만, 마네트 박사의 편지로 다시 투옥되니 말이다. 마네트 박사가 과거 납치 되어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을 당시의 사건 전말을 써 놓았던 편지- 절망과 고통가운데 에브레몽드 후작에 의해 짓밟힌 농가의 이야기-로 인해서 드파르주 부인이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찰스가 귀족의 후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군중의 광기를 불지피우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렇게 찰스는 단두대 위에 다시 한번 선다.
혁명과 사랑, 역사 ..... 세 가지가 얽혀가며 만들어내는 삶의 무늬는 눈물과 안타까움, 슬픔이다. 혁명이 주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가슴 묵직한 슬픔을 남긴다. 마네트 박사는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역을 하였던 휴잭맨을 연상하며 읽게 되었다. 지적이면서도 때론 강인한 장발장이 빵 한조각을 훔친 대가로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야 했듯이 마네트 박사 역시 귀족에게 착취당한 농민을 위한다는 이유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빅토르 위고와 찰스 디킨스가 말하고자하는 프랑스 혁명의 이면들이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는 시대였던 혁명의 시기는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인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얼핏 보아서는 루시와 찰스의 사랑이야기 인듯 하나, 그 둘의 사랑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버지 마네트 박사의 애정과 로리의 충성과도 같은 믿음, 카턴의 희생과 하녀 프로스의 우정이라는 개개인의 사랑과 믿음으로 파생된 완성체라는 점에서 그 숭고함이 빛나는 사랑이라는 점이다. 혁명이라는 씨줄에 사랑이라는 날실을 자아 역사라는 천을 만들어 탄생한 '두 도시 이야기'는 혁명이 품고 있는 시대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