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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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새해 첫 날이 밝은지, 7일째이다. 시간은 내가 느끼는 감각보다 더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그 시간안에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담아낼 수 있을까.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일어나고,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고 거의 본능적으로 어제의 삶을 답습하고 있다. 생각이 사라져버린, 삶에 대한 치열함이 사라져버린 나의 모습에 조금씩 환멸을 느끼는 요즈음, 김광석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광석이 떠나간지  벌써 18년이란 세월동안 나는 그의 존재에 전혀 공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김광석의 노래를 시작으로, 하루를 김광석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마감한다. 내가 김광석을 알게 된 것은 1992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그때 이미 김광석의 팬이었던 남편은 김광석의 노래에 푹 빠져 있었고  반대로 나는 김광석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그러나, 그의 노래에 담겨있는 삶의 무게와 일상의 치열함들이 나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서 그 안에  삶의 허무가 , 세월의 더께가 , 세월의 무상함이  하나 둘씩 내 앞에 실체를 드러내자  비로소 그의 노래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함정

 

시간은 놀라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안타까울 이유도 없는 것

지난 시간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매어놓지도 않는다.

스치는 바람의 끝이나 시작이 없는 것처럼

인생도 애당초 의미 없는 것

삶의 힘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애써 만들어놓고

스스로의 행동에 힘겨워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사람, 참 어리석은 동물이다.

스스로 함정을 파놓고 그 안에서 행복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민하는 답답한 생물.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겼던 김광석의 흔적들로 엮어졌다. 한편의 시집처럼 유려한 글쓰기를 보면서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김광석의 내면의 고독들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삶'이 주는 무게들이 한 층 한 층 쌓여가며 마음에 층위를 이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해가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들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안에서 유한한 우리들의 삶의 한계를 인지해 갈때마다 스며드는 쓸쓸함이 , 음악에 대한 갈증과 정체성으로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하였던 고뇌의 흔적들은 슬픔을 머금고 위태롭게 생의 궤적들을 꿰고 있었다. 일상의 삶에서 실존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였던 흔적들은 바로 그의 노래가 되어 김광석만의 오브제를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 노래의 원천은 바로 '삶' 그 자체였다.

 

'인생은 수영장과 같다.이렇게 힘든 일이 자꾸만 날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래 가라앉아 보자. 내려가다 보면 바닥은 나올 것이고, 바닥이 차고 올라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동물원>에서 탈퇴하면서 발표한 <나의노래: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아무도 뵈지않는 암흑속에서/ 조그한 읊조림은 커다란빛 /나의노래는 나의힘/나의노래는 나의삶)>를 통해 자신의 음악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듯 했지만, 이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슬픔의 그림자들,   <이등병의 편지>가 어떤 노래보다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는 이유를 , 사십에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었다던 그의 이야기를 , 환갑에도 로맨스를 꿈꾸던 그의 노래가, 가삿말이 슬퍼서 부르기 싫어했다던 <서른 즈음에>의 애절함이 , 자의적인 사랑노래가 아닌 해피엔드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다는 노래와 얽혀있는 일상의 이면들이 그의 짧은 삶과 어우러져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이리라.  그 말은 달리 말해 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했던 노래들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자 슬픔임을 김광석이라는 이름 하나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떠난 18년 더하기 하루인 오늘도 난 당신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한다.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당신의 노래로 난 이 시절을 견딘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들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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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니, '동물원 탈퇴'가 아닐, 동물원 식구들이 저마다 '취업'을 하여 돈을 버는 자리로 찾아가면서, 김광석 님이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얼결에 '솔로 가수'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저 노래 한길을 걸은 셈이라고 할까요.

즐겁게 읽으셨겠지요? 떠난 님을 그리면서 애틋한 이야기 그득그득 합니다.

드림모노로그 2014-01-07 15:47   좋아요 0 | URL
김광석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찾기 위해 동물원 1집후 탈퇴한 것은 맞습니다.
에세이집은 아무래도 유고집이고 부분부분 발췌한 것이라
각자 생활이 바빠서 헤어지게 된 것처럼 이야기가 남겨졌지만요.
김광석 개인적으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엄청 치열하고 고민하였던 시기였구요.
한동안,,, 멜랑꼴리에서 헤엄치고 다녔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