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은 위대한 문학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위대한 문학은 억압과 착취 속에서 망각된 존재를 불러내어 장례를 치러준다고, 이를 통홰 치유와 위로를 주고, 인간 현실의 비극적 조건을 드러내, 그런 현실을 변혁하는 동력을 부여한다고.”
점점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에 경도되어 인간적인 가치들이 하찮게 되어가는 시대에 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에서 가장 인간적이고도 정의로운 ‘도련님’을 탄생시켰다. 도련님은 가난하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사는 인물이 아닌 의협심과 정의로 똘똘 뭉쳐있는 도련님을 통해 울고 웃으며 알게 모르게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내 안에 잠들어있던 망각된 존재를 불러내어 장례를 치르는 벤야민이 말하는 위대한 문학의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그 자체로 희망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태풍》의 주인공 문학사인 도야 선생에게도 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삶에서 불어 닥치는 태풍과 같은 강렬한 고독과 외로움을 문학이라 설파하는 도야선생이 “문학이야 말로 인생 그 자체이며 고통과 궁핍, 고독과 같은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곧 문학이며 이런 것을 맛본 사람만을 문학자'라 하였듯이, 위대한 문학은 인생이 된다.
《도련님》,《태풍》이 문학에 한정되어 있다면《풀베개》는 예술에 관한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다. 내가 읽은 순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빼고 집필 순서순이다. (우연히) 기존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인 풀베개는 非人情비인정이라는 초탈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일본 선불교禪佛敎 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공간적 배경인 봄밤의 꽃 그림자와 달빛 아래 나지막한 노랫소리에 취한 으스름달밤, 우연히 묵어가게 된 외딴 마을의 온천마을이 주는 느낌은 마치 김유정의 <메밀꽃 필무렵>처럼 서정적이고도 시적인 느낌을 준다. 마찬가지로 풀베개 역시 한줄기 빛을 찾아 헤매는 하루살이와 같은 우리의 삶에서 희망의 집어등 역할을 해주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들에는 현실의 긴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교감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나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위대한 문학이 주는 희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