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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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가 인상적이다. 《도련님》,《태풍》이 문학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풀베개》는 나쓰메 소세키의 예술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非人情비인정이라는 초탈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풀베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태풍> 집필이후 자기 자신만의 실험적인 문학적 세계인 하이쿠 문체를 선보였는데, 그책이 바로 《풀베개》이다. 5,7,5의 음수율을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를 하이쿠(俳句 : はいく)라 하는데 나쓰메 소세키는 이 작품을 불과 2주만에 탈고하였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풀베개의 첫문장은 많이 인용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바로 이 부분,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理智(이지)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좌우지간에 맞는 말이다. 인간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 때론 만만하기도 하다가, 그 만만함에 큰코 다친 뒤에야 세상이 만만하지 않음을 깨닫고 몸사리며 살다가 한큐에 끝나버리기도 하는 것이 인생살이인 것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시지프스의 돌멩이와 같은 메가톤급으로 어깨를 눌러오고 있을 때, 《풀베개》를 만났다. 느낌은 장자의 호접몽이였던가, '한바탕 나비가 된 꿈을 꾸고 나니 나비가 내가 되고 내가 나비였다는, 내가 실제인지 나비가 실제인지도 모르는 꿈속을 거닐 듯이 나쓰메 소세키만의 '비인정 세계'가 펼쳐진다. 나도 내가 아니고 싶구나.~

 

세상에 환멸을 느끼며 예술가로서의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화가의 독특한 여행기이다. 화가는 '비인정의 세계'를 찾아 떠나며 이 여행의 목적은 다름아닌 '속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속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라 밝히고 있다. 초탈(非人情비인정)의 세계를 찾아 떠난 화공은 사물을 '나'가 아닌 타인 또는 제3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예술의 미美를 깨우치고자 함이다. 마치 그렇게 보는 것이 시이고 하이쿠라는 듯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히 잊고 순수 객관에 눈을 줄 때 비로소 나는 그림 속의 인물로서 자연의 경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예술의 미를 강조한다. 이러한 비인정의 세계는 예술의 세계이지만, '내리는 비가 괴롭고 내딛는 발이 피곤하다고 마음을 쓰는 순간, (세상의 번민이 스며들때) 화공은 인정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인정 세계에서 화공은 ' 이미 시 속의 사람도 아니고 그림 속의 사람도 아니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네

진지한 웃음이라 해도

거기에 고통 있느니

가장 감미로운 노래에는 가장 슬픈 생각이 깃들어 있음을 알라.

 

이렇게 초탈(비인정)의 세계로 세상을 보면 화공이 보는 모든 사물은 '시'가 된다.  봄밤의 꽃 그림자와 달빛 아래 나지막한 노랫소리에 취해 으스름달밤, 우연히 묵어가게 된 외딴 마을의 온천은 화공의 비인정 세계를 완성해주는 공간적 배경이다. 허풍쟁이 이발사와 꼬마 땡중의 말장난, 이발사가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나미라는 여인은 화공에게 시와 문학과 예술의 좋은 재료가 되어 준다. 언뜻 당돌해 보이는 이 여인은 화공의 시 안에서 한폭의 그림과 같은 영감을 주지만, 여인은 마음에만 담기지 그림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인에게 전쟁 한복판으로 떠나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 남편을 바라보는 연민(憐憫)이라는 인정人情의 얼굴에서 화가의 그림은 완성된다. 바로 이 장면이 풀베개의 화룡정점을 찍는 부분이다. 비인정 세계, 즉 제 3자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 보아야만 예술의 궁극에 이를 수 있다는 예술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풀베개의 결말은 인정세계에서만 해탈이 가능하다는 예술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삶과 예술은 한몸처럼 붙어있어 삶에서 예술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연민이란 기쁨과 함께 붙어있는 한몸이다. 화공이 예술을 위해 초탈(비인정)을 꿈꾸었지만 인간사의 감정(연민, 고통) 없이 예술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여행이었다. 한 편의 소설이지만, 소설이 시처럼, 그림처럼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나쓰메 소세키가 <태풍>에서  문학사들의 이상과 신념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면, <풀베개>는 나쓰메 소세키가 추구하는 예술가의 이상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우울함을 한방에 날려주는 나쓰메 소세키만의 위로라고 할까.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

 

인정 세계의 아름다운 행동은 正(정)이고 義(의)이고 直(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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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12-2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넘 공감이 가서 단상 하나 건졌었는데, 드림님은 리뷰로 완성하셨네요.
특히 첫 문장은 펼치는 순간부터 아차, 이거다 싶더군요. 이지와 이타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게 일상인의 표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淸隱청은 2013-12-26 15:09   좋아요 0 | URL
와~ 팜므님 잘 지내시지요? ^^ 정말 오랜만입니다 ~ ㅎㅎㅎ
풀베개 , 시처럼 잔잔하게 읽히는 소설이지요..
사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지와 이타사이에서 갈등하며 사는 거요 ^^
얼마 남지 않은 연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