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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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삶을 동경했다.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더 좋은 삶을 동경하며 살았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지금의 삶은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지나치게 평범한 내 삶이 불만이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과  삶의 단조로움이 때론 지루함을 동반하여 견뎌야 하는 시간의 공백에 갑갑함을 느끼며 살았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별볼일 없는 나날의 연속은 더욱 그렇다. 낙엽들이 거리에 뒹글며 을씨년스러웠던 거리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의 옷을 입었다고 삶도 똑같이 화려해지지 않는 것처럼 나의 삶, my life역시도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화려함과 수러거림의 나날이 더욱 삶을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한다. 그 시간안에서  평온함의 연속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삶의 모습에 가끔 안도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이 전부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위안이 있다면  내 시간안에 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책이 내 시간의 밀물이 되어 파도처럼 밀려와 내 일상을 덮는 것만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며칠 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막둥이가  Dear로 시작되는 영문편지를 보냈다. 그때 문득 노벨상 수상작가 앨리스 먼로의  표제작이 디어라이프 Dear Life 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웃음지었던 것 같다. 기억과 순간의 연관성은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캐나다에서 부터 날아 온 , 시간의 파도에 떠밀리어 내 앞에 떠밀려온 유리병편지를 건져 올리듯이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만났다. 단조로운 일상에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책에는 열 편의 단편소설 (일본에 가 닿기를, 아문센, 일본에 가 닿기를,아문센,메이벌리를 떠나며 자갈,안식처,자존심,코리,기차,호수가 보이는 풍경,돌리) 네 편의 자전적 이야기-시선, 밤, 목소리들, 디어 라이프-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그녀의 단편소설들의 첫 느낌은 지나치게 평범했다. 그녀의 서사는 굴곡도 없고,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고, 극의 크라이막스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서사의 끝에는 핵폭탄급의 충격이 남는다. 평범함  속에 녹아든 절제된 수사修辭)가  그 어떤 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서사의 힘이었다.  

 

 첫 단편의 시작 [일본에 가 닿기를]은 자칫 페미니즘 성향이 짙은 소설로 읽혀졌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성향이 짙은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부분의 여성작가들이 여성의 자유를  성性의 자유와  동일시 하는 것자체에 불만을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앨리스 먼로는 페미니즘 작가가 아니었다. 그레타의 일상에서 남편과 아이가 아닌 것의 탐닉을 '죄'라고 느낀다는 것은 앨리스 먼로가 여성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인 동시에 여성이 떠안고 있는 삶의 굴레를 가장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신을 내맡기는 것.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내맡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머리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에 세워진 벽이 무너져야 했다. 진실함에는 그것이 요구되었다. 관습에 익숙하고 관습을 따르지 않던 여성이 스스로의 벽을 허물며 자아를 찾아가지만, 죄라는 감정으로 자신을 정죄하는 모습에서는 여성 심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게 하였다

 

 여덟편의 단편소설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캐나다의 한적한 마을 '타운'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같은 것처럼, 삶에서의  결핍, 비극과 슬픔이라는 궤도위에 태양처럼 존재하는 삶의 태양궤를 그린다.  결혼식전날,  늘 오묘하고 경계하는 듯하고 놀라는 왼쪽눈을 한 남자의 이별선언 “아마도 언젠가 당신은 이날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의 날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요.”라는 말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돌아서는 여자의 담담함처럼 . 소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의 서사가 시간의 흐름처럼 담담히 흘러간다. 마치 슬로우모션으로 비디오를 보는 기분이랄까.  [메이벨리를 떠나며]의 레이와 이저벨, 리아의 이야기도  상실과 결핍으로 점철되어진 일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에게서도 어떠한 슬픔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삶의 상실전문가로 남겨졌을 뿐이다.  [자갈]의 주인공이 언니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겨져 상처의 시간을 지나며 고통의 터널을 지날지라도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라며 위로를 건네듯이, 작가는 모든 것을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낸다. 모두 단편소설이지만, 이 짧은 소설안에 장편과도 같은 서사의 힘을 담았다는 것은 앨리스 먼로만이 가진 재능인 것 같다.  푸쉬킨의 유명한 싯귀에 소설이라는 옷을 입힌 것처럼  《디어 라이프》에 실린 여덟편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삶이 그대를 속이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는 암묵적인 메시지들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작가의 감정의 절제가 역으로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삶의 비극을 농담처럼 풀어놓는 듯 했다.  그럼에도 먼로가 삶을 보는 시선이 냉소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일상의 소소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작가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수식답게 단조로운 일상에서 퍼올리는 삶의 진경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내 삶에 스며들어 있곤 하였다.  소설이 비극안에 삶의 진실을 숨겨놓는 것처럼, 먼로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어두운 심연들은 단조로운 삶 속에 존재하는  삶의 한귀퉁이임을 인정하라는 듯했다. 어쩌면 삶에서 비극을 일상처럼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폭죽터지는 감동이 된다는 것은 문학이 알려주는 삶의 비밀이리라.  매일 똑같이 별일없이 단조롭게 사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단조롭다 못해 지루하기 까지 한 나날,  먼로의 유리병 편지 《디어 라이프》는 내 삶에 보내는 따뜻한 응원이나 다름없었다, Dear Life  ~~!!!  단편소설의 기적을 앨리스 먼로에게서 보았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춤을 추듯 움직이지만, 서로의 길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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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삶일까요?
예쁜 삶일 테지요.
모두들 아리따우면서 고운 삶이겠지요~

드림모노로그 2013-12-19 10:13   좋아요 0 | URL
ㅎㅎ 삶 자체가 축복이겠지요^&^
일상의 반짝이는 소중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