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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평점 :
70이 넘으신 어머님은 지금도 책을 가까이 하신다. 내가 책을 읽고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머님도 그 책을 읽으시고 나와 책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님은 그렇게 나와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요즈음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시라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런 어머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매양 크다. 어머니를 보면서 나의 미래 역시도 책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요즘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다보니, 책을 읽는 시간이 사실 녹록치가 않다.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싶고, 또 아무 생각없이 예능프로를 보며 휴식하고 싶은 유혹이 많다. 그때마다 공부할 시간과 여유가 전혀 없는 현대인의 삶이란 것이 이토록 힘든것일까 하는 자각을 하곤 한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시대가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물질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더 많음을 실감하곤 한다. 그렇다보니 공부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는 우리의 정신이 더욱 피폐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명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아도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인터넷이 생활의 모든 면을 잠식해가는 사이에 공부라는 개념이 무색해질 정도로 공부의 가치는 바닥에 떨어졌지만, 꾸준히 공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 한해만 해도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룬 이유도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정보가 곧 나 자신과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며 정보가 우리의 삶과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는 삶과 연결되어진다. 다산 정약용이 ‘삶의 모든 부분을 공부에 일치시키는 삶’을 살기 위해 평생 공부를 하셨던 것처럼, 공부의 문리는 하루이틀로 트이는 것이 아니다. 현대는 언제라도 눈을 돌리고 공부외의 다른 것들로 삶을 채우라면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시대이지만 다른 것은 채울 수 있을지라도 '정신'적인 부분은 절대 채워질 수 없다. 정신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정신이 시작하고 정신이 완수하고 정신이 인내하고 정신이 성취한다. 따라서, 정신적인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인들이 점점 피폐해져가고 우울해져가는 것도 이런 정신이 고장 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보고, 하고, 바꾸고 싶은지, 자신이 어떤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 안에 어떤 열정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씨앗을 틔운 뒤라야 , 공부와 삶이 일치되어가는 삶을 살 수 있다.
‘천재성이란 오랜 인내’라고 할 때 그 인내는 조직적이고 총명한 인내여야 한다. 어떤 공부를 해내는 데에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균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에 달려 있다. 정성을 들이며 착실히 일하는 노동자처럼 에너지를 써야한다. 그 노동자가 어딘가에 도달하는 동안 독창적인 천재는 대개 쓰라린 낙오자로 남는다.
이 책 《공부하는 삶》의 저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신학대전』으로 가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연구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용구가 많다. 또한 신학자이기에 종교적이다. 저자는 영적으로서 깨어있는 사람이 지적인 일에 일생을 바치는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지성인의 모든 삶은 공부와 연결되어 있다. 젊은 날, 내 방황과 고독을 지탱해주었던 책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이었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이 좋았고 염세주의적인 사고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개인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책 백권을 읽는 것보다 철학자의 심오한 인생론 한권이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 성공한 사람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고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자존감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자존감은 성공에 필요한 덕목이지만, 자존감이 지나치게 강하면 실패했을 때 다시 재기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반면, 철학자들의 인생론은 염세적이며 자존감이 아닌, 자신을 알라고 조언한다. 세상의 모든 허물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가 철학자가 되는 시간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의지, 깊게 뿌리박은 의지다. 누군가가 되고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의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유한 이상을 지향하는 누군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지다.
대중에 관해 말하자면, 때로는 대중이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방해하고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거리에서 몇 푼 주우려다가는 자신을 망치고 말 것이다. 이런 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고독이다. 그 고독안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백 개의 낱알을 맺고, 충만한 태양빛이 모든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하는 삶은 다산 정약용의 말씀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삶은 통일체이기 때문에 삶의 다른 기능들을 무시한 채 한 가지 기능에만 전념하거나 다른 기능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의 궁극적 목적은 ‘참된 것과 연합하는 것, 참된 것과 하나인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공자의 일이관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삶의 구성 |
공부를 위한 시간 |
공부의 영역 |
공부하는 정신 |
1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
1 공부는 연속적이어야 한다 |
1 비교탐구를 수행하라 |
1 탐구하는 열정 |
2 고독하게 묵상하라 |
2 밤의 원리를 받아들여라 |
2 토마스주의, 앎을 위한 이상적 얼개 |
2 집중은 필수다 |
3 동료들과 협동하라 |
3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법 |
3 전공을 정하라 |
3 진리에 복종하는 마음 |
4 현실 감각을 유지하라 |
4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 |
4 필연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것들 |
4 넓은 시야를 가지자 |
5 꼭 필요한 활동 요소는 지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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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비감 |
6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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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부하는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상을 단순화해야 한다. 시간과 사유, 자원, 역량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과의 그물에 뒤엉키게 되면 삶이 복잡하기만 하고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헛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가장 조심하라고 하며 공부하는 지성인은 모든 자원을 영감의 불꽃을 지피는데 써야한다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독의 순수함’처럼 말이다. 마지막 공부의 실전편에서는 <읽기>와 <쓰기><기억하기>등이 실려있는데 매우 실용적인 부분이다. 읽기는 지적으로 읽어야지 결코 격정적으로 읽지 말며 건강과 현명한 소비규칙을 가진 주부가 장을 보는 것처럼 읽어야 한다고 한다. 기억은 기억하려는 것을 정돈하여 몰두하고 자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기억한 것을 회상할 때는 나머지를 떠올리게 해줄 기억 사슬의 한쪽 끝을 잡아야 한다. 쓰기는 누구를 위해 쓰려 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라는 조언이 실려 있다. 자신의 입장과 문제를 뚜렷이 보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규정하기 위해, 계속 활동하면서 정신을 환기하지 않으면 시들해지는 주의력을 유지하고 자극하기 위해 써야한다. 문체의 특성은 진실, 개성, 간결 하게 쓰되 이중에서 ‘진실하게 써야한다’가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을 조금씩 읽어오는 동안 내면에 퍼지는 고요함을 즐기는 시간들이었다.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더이상 낭비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낭비하고 산다. 시간과 자연과 주어진 모든 것들, 그리고 삶마저...... 공부하는 삶을 통해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영혼에 내리는 촉촉한 단비같은 책이다. 정신과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지만, 진리라는 것은 세월의 흐름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몇백년 전의 수도원에서나 들어봄직한 공부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나무가 하늘을 우러러 사는 것처럼,공부와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이 이 땅에 온 우리들의 소명은 아닌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