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위의 신 -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성을 왜곡하는가
대럴 W. 레이 지음, 김승욱 옮김 / 어마마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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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TV프로그램《자기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에 하는 프로였고 모두 중년을 훨씬 넘어선 분들이 출연자였었는데 이날의 주제가 바로 '부부의 성'이었습니다. 모두 손주 손녀를 보고도 남는 나이들이라 그런지 공중파임에도 너무 솔직히 性(성)에 대한 담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많이 놀라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들어 성에 대한 과감한 접근을 본의아니게 많이 접하고 있긴 합니다. 새삼스럽게 '성'이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더라구요. 그만큼 성에 대한 사고가 자유로와 졌다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한편으로는 은밀한 성욕이 이제는 본능의 일부라는 것을 사회구성원들이 자각해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로 자랐지만, 지금은 근본주의가 싫어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근본주의라 하면 사람들이 어렵게 받아들이거나 뜻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쉽게 말해 교리 중심주의를 근본주의라 합니다. 오로지 교리, 성경중심이라는 것이죠. 교회사람들은 교리중심이 왜 나쁘냐고 하지만, 교리중심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교리만 강조한 나머지 성경외의 다른 것은 모두 나쁜 것으로 배척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를 향한 수많은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는 이 뿌리깊은 근본주의가 있습니다.  

 

이 책 《침대위의 신》의 저자 대럴 W. 레이는 이 책을 통해 종교가 억압하는 성性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째 성보다는 종교비판의 목소리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는 것을 운명으로 알았다는 저자가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된 경위는 다름아닌  교회 지도자들의 수많은 성적 비행을 보게 되면서라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성적기행'이  교회지도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가진 사람’들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었답니다.  이후 저자는 무신론자로 커밍아웃하면서 종교가 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부제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성을 왜곡하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중요한 논조는 종교가 ‘인간의 성‘을 어떻게 억압하고 통제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심 논조이고 부차적으로는 종교와 성(섹스)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입니다. 가장 첫 번째로 저자는 종교가 사람들의 성행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믿음의 요인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이 세 가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신이 내세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으로 모든 성행동을 배제한다'믿음은 모두 함께 공존할 때 성이 주는 쾌락보다 종교가 주는 믿음이 더 강해지게 한다고 하는데요. 이 믿음은 '섹스는 훌륭하지만 천국은 그보다 더 훌륭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믿음들-내세,신,성행동-의 조합이야말로 이슬람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들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됩니다. 이 요인을 통해 저자는 종교를 널리 퍼뜨리는데 성적인 억압이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죠. 저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종교가 주는 억압적인 성이 아닌, 성 자체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거듭 강조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물학, 심리학, 역사, 인류학에서 말하는 성을 알아야 하며 여러 시대와 다양한 문화속의 성도 살펴보아야 하고  인간의 성性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그려주고 있는 성지도처럼요.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허나,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시종일관 불편함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예수의 정체성 역시도 어불성설 같구요. 성경이 주장하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박논리 또한 성경의 팩트가 아닌 추측으로 일부분만을 발췌하여 반박하는 것에 불과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종교가 성을 억압하는 경우의 예는 극단적인 예일뿐 통념이라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이야기들이 다수였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에 억압적인 성향을 띠며 죄책감과 수치심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지만, 저희 집안을 보더라도 아니 저를 보더라도 전혀 그런 부분, 성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이 공동담론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성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에 대한 저항과 스트레스가 강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우리나라를 보아도  참여정부 시절에 성매매특별법으로 집장촌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성범죄가 가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은 억압하면 할수록 저항이 강렬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공교롭게도 최근 불거진 유명 목사의 불륜으로 또 한번 교회지도자들의 성적기행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종교가 결코 성욕을 누르지는 못하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터부시 되었던 성性을 조금은 자유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접근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종교에 대한 관점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시대 착오적이지 않나하는 부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부일처제가 종교의 왜곡된 성이 고착되어진 사회적 제도라는 주장은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과 싸우며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것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종교에 왜곡되어져 그릇된 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누군가가 바른 길로 가게 인도해줄 수 있는 것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과정중의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사라 해서 억압된 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목사이기 전 인간이기 때문에 성에 대한 억압을 지닌 것이라는 것이죠. 저자가 무신론자의 시각으로 유신론자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협적이라는 비판은 면치 못할 듯 합니다.  접근법이 종교에 국한되어 있고 비판적인 시각이 불편함으로 남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성지도性指導를 그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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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밈없이 바라본다면 비틀리지 않지만,
꾸미고 덧씌울 때에는 모두 비틀리겠지요.

아름다울 때에는 어떤 이름이나 껍데기가 없지만,
아름답지 않을 때에는 자꾸 이름이나 껍데기를 뒤집어쓰지 싶어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2 10: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꾸밈없이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떠올려봅니다.
살면서 편견과 자의식은 점점 강해지게 되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
편견이라는 것을 좀 거두어내고 삶을 바라보아야 할텐데
어떤 구분, 무신론,유신론이라는 구분자체가 인간이라는 영장앞에서는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함께 살기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리구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