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풍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소세키 전집 첫 번째 책 《도련님》에 이어 읽게 된 책은 《태풍》이다. 태풍의 집필 시기가 궁금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연보를 찾아보다가 태풍이 빠져 있길래 해설 부분을 먼저 읽게 되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중 가장 덜 읽히는 소설이고 초기의 성공작이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 도련님,1906>의 인기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작품연보에도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태풍1907>은 네 번째 장편소설로 나쓰메 소세키가 교직에서 떠나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한 해에 집필한 소설이다. 태풍의 주인공 도야 선생은 천방지축 도련님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주인공이다.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태풍의 주인공은 오히려 <그후> 의 게으른 지식인 다이스케와 더 많이 닮아있다. 도련님이 확실히 재미가 있는 작품이지만, 태풍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재미있고 없고를 따질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이상과 신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태풍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가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본 듯하여 전보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에 더한 애정이 샘솟는다. 도련님에서 웃음으로 승화하였던 사상가의 면모가 태풍의 주인공 도야에게서 더 진지해졌다고 할까.
1,도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구도는 주로 삼각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에서도 세 명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태풍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1900년을 지나고 있는 사회적 격변기이다. ‘수억의 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실업가들이 내놓는 티끌 같은 돈 부스러기로 연명해가는 사람이 바로 문학사이다’ 라는 도야의 독백에서 보여지듯 소설은 신구파간의 갈등과 충돌로 혼란한 사회상 뿐만 아니라 돈이 만능인 시대가 되면서 문학이라는 정신적인 의미가 퇴색해져 가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융통성 없고 학자로서의 권리만을 주장하다가 중학교에서 퇴학과 전학을 여러번 하게 되자 도야 선생의 집안 형편은 순식간에 빈곤해져만 가게 되고 돈에는 관심이 없고 도道에만 관심이 있는 백면서생 도야를 바라보는 아내의 가슴은 쪼그라드는 살림 앞에서 더욱 싸늘해져만 간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게 목적이다.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가벼운과 무거움의 차이를 인식한다. 또 좋고 그름을 판별한다. 선과 악의 경계를 이해하고 현명함과 어리석음, 참과 거짓, 바름과 사악함을 제대로 판별해내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다.
2, 나카노와 다카야나기
나카노 기이치는 잘 생긴데다 현명하고, 인정을 베풀 줄 알 뿐만 아니라 사리분별이 분명한 수재다. 다카야나기 군은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비아냥거리기 좋아해 염세가라 불리는 남자였다. 반면 나카노군은 대범하고 원만한 성격에 다양한 취미를 가진 수재다.(p32) 학교를 졸업한 후 나카노는 부잣집 도련님이라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다카야나기는 먹고 살기 위해 문학사 즉, 글을 쓰는 일에 이제 막 한 발을 내딛는 중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외톨이였고 내성적이며 예민한 성격탓에 세상으로부터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고 타인의 시선에 늘 두려워하며 불안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폐병이 점점 다카야나기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아무런 꿈과 희망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도야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죽어가던 다카야나기는 문학사로서의 이상과 신념을 되찾아 간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문학사인 도야와 다카야나기의 삶은 가난하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러나, 똑같은 가난에도 도야선생이 바라보는 세상과 다카야나기의 세상은 전혀 달랐다. 도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었고, 자신이 깨달은 이상과 진리를 문학으로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고자 하는 희망을 지녔지만, 다카야나기가 바라본 세상은 자신이 중심인 세상만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보았고 자신의 기준에서의 문학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길은 시작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하는 신념과 이상에 대한 연설을 하는 도야 선생의 모습은 마치 빙의된 나쓰메 소세키의 연설을 보는 것처럼 장렬함이 전해진다. 문학사라는 , 인간의 삶을 대변하는 외로운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같은 이야기였다. 삶에서 불어닥치는 태풍과 같은 강렬한 고독과 외로움은 '이상' 이 있는 이들에게는 한낱 그치는 빗방울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