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인 이야기 1 ㅣ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평점 :
중국의 현대사는 한중일의 역사와 밀접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한중일이 동시에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역사에 시퍼런 멍이 들어가는 근대를 지나는 동안 중국은 신해혁명이후 청의 몰락으로 중국공산당 이념과 자유주의 혁명의 접점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사상적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동안 태동한 사회교육 운동은 실패하였으나 인민혁명군의 추종자를 만들어내었고, 66년 문화대혁명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진다. 이러한 중국 현대사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 즉, 이들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중국인 이야기》이다.
‘참새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는 한 농부의 탄원서를 받아든 전국문화예술인연 주석 궈모뤄가 ‘수천 년간 우리의 양식을 수탈하며 저질러운 죄악, 이제야 관계를 청산할 때가 왔다.’며 참새에게 선전 포고를 한 뒤 전국에서 40여 만 마리의 참새를 소탕하게 된다. 이후 중국 천지에는 벌레가 들끓이게 되고 참새는 다시 복권되는 헤프닝으로 첫 장을 열었다. 첫 장의 느낌은 역사책이 아니라 중국의 야사 (野史)를 접한 기분이었다. 참새와의 소탕전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중국 대륙을 광기에 물들게 한 문화대혁명의 중심 인물들은 이렇게 무모하고 지식이 얕았으며 학력 콤플렉스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열등감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이 참새 전쟁은 문화대혁명 전초전 중의 하나였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지닌 인물들은 모두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상식이상의 모습들이었다.
마오쪄둥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인물들 중 류샤오치는 마오쩌둥의 속마음을 읽지 못하여 서열 2위에서 서열 8위로 밀려나고 대신 서열 6위인 린뱌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순식간에 서열이 바뀌는 이런 긴박한 정치사는 천하를 놓고 싸울 때는 가깝기가 한몸 같았지만, 천하에 군림하자 남은 건 결별이었다.' 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류샤오치는 문혁당시 비명횡사하고 만다. 류샤오치의 바통을 이은 린뱌오는 물과 햇빛과 바람을 싫어하였고 괴짜 혁명가의 면모를 지녔다.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평소 청교도적이며 고행승과 같은 생활습관 때문에 정신병자로까지 보이기까지 하였다지만, 후에 반反마오편에 서게 되면서 소련으로 도망가던 중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을 보면 정신은 멀쩡하였던 것 같다. 린뱌오와의 재미있는 일화는 마오쩌둥과 사돈지간이 될까봐 전국 공군과 해군에 며느리 간택작전을 벌여 무용수 장닝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는 부분과 세 번의 웃음으로 며느리를 선택하였다는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중국인이야기에서는 지극히 개인사이면서도 야사에 실릴 법만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많이 실려 있다. 이렇게 역사책 외의 인물중심의 역사는 혁명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어 중국인들의 색다른 면모를 보게 된 곳은 전시중에도 중국인들의 교육열을 볼 수 있는 ‘시난연합대학’ 의 설립이 아닐까 한다. 전쟁중에서도 교육은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일본군의 공습경보와 함께 뛰어 달리는 것도 하나의 공동필수 과목으로서 교수와 학생이 모두 공습대비에 철저하였고 시난연합대학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전시중에는 볼 수 없는 낭만을 선사하는 기분이었고 이 대학에 종사하던 교수진들의 구성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지만 몇 개월 전 사망하여 수상이 취소된 선충원과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양전닝과 리정다오, 독특한 수업방식과 장자에 대한 열정을 지닌 괴짜 교수 류원덴과 같이 모두 자타공인의 학자들이라는 점을 볼 때 현재 중국을 가장 부강하게 만든 원동력은 중국인들의 타고난 교육열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화는 중국의 혁명가들이 대거 배출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인 된 두부이야기였다. 청말 명문의 후예 리쓰정이 파리 교외에 두부공장을 열면서 시작된 근공검학(勤工儉學) 운동(근면하게 일하고 검약해서 공부한다)은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만한 혁명가들을 배출하게 되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였는데 이 모든 원인은 혁명과는 전혀 상관 없는 두부였다는 사실. (차이허썬, 저우언라이, 자오스옌, 덩샤오핑, 런줘쉬안,장선푸등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혁명가들이 모두 이 근공검학생들이었다.)
이외 중국의 격동하는 현대사에는 삼국지의 조조,제갈량,동탁, 사마의 같은 인물보다 더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은 것 같다. 장제스와 비극적인 대논객 천부레이는 마치 제갈량의 삼고초려를 보는 기분이었고 , 천부레이가 평생을 정치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장제스의 호위와 배려에 국민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사위와 딸이 공산당이라는 사실을 장제스가 눈감아 주자, 스스로 약을 복용하고 세상을 떠난다. 천부레이의 이야기를 통해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마천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는 듯 하였다. 중국을 공자의 나라라고 부르는 만큼 중국의 여인들 역시 유교 정신을 받들어서인지 매우 지혜롭고 현명하면서도 정치적이다. 장제스의 부인 천제루는 장제스를 위해 평생을 침묵으로 살았고 마오쩌둥의 부인 허쯔전은 수많은 여인들과의 추문속에서 마오를 저주하며 타국에서 평생을 보냈지만, 역시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평생 침묵해주었다. 타이완 여성 혁명가 셰쉐홍과 중국공산당의 아름다운 꽃 궁펑,문화대혁명 시절 4인방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장춘차오의 어여쁜 조강지처 원징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산 혁명가 여인의 이야기였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가 스탈린 편에서 장제스를 신랄하게 비판하였을 때, 아버지 장제스의 한 마디 ' 나의 아들은 살아있구나.' 라는 부분은 혁명가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까. 독특한 것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동안 이들이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마음 한뜻이었다는 것은 매우 귀감할 만한 부분이다.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 경제까지 아우르며 여러 가지 얼굴의 중국을 담아 중국 혁명의 이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 워낙 생생하여 칼라판인 줄 착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흑백이었을 정도로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들이 사진으로 실려 있어 중국의 현대사 자료로 써도 손색이 없는 책이었다. 평소 군자의 삶을 살았다고 알려진 저우언라이의 인간미를 다시 보게 되는 이야기도 더러 있었고 알려진 중국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중국은 실리의 나라인 동시에 속을 알 수 없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인들이 가진 장점들(우리나라와 다른 점들)을 비교해가며 중국이란 나라의 보여지지 않는 부분들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들을 보며 중국이 한결 먼나라가 아닌, 친숙한 나라로 다가왔다. 굴곡진 역사와 수많은 인간 네트워크속에 얽히고 섥힌 중국의 역사가 결국 인간 중심의 역사라는 점은 중국을 혁명의 근원지로 만든 구심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이야기가 '인간'이 중심이었을 때, 역사를 보는 시각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듯이 이명호 저자의 '인간'중심의 역사서를 통해 중국을 향한 시각의 전환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나라, 중국의 속살을 벗기는 10권이라는 대장정의 서막《중국인 이야기 1》에 불과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대기 순 기술이 오히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대혁명이야기에서 시대를 거꾸로 올라가 위안스카이로 마무리 짓기 보다는 위안스카이로 시작하여 문화대혁명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2권을 읽으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