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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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열정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사랑하여 열망하는 일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이며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열정의 다른 이름은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 셈이다.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 A는 남자 A를 사랑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연하이며 유부남이다.  고급 정장을 좋아했고 대형 승용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프랑스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그다지 매료되는 것 같지 않은 ’ 남자는 통속극을 좋아하며 술을 많이 마시는 보통의 남자이다. 여자A는 자신의 모국어조차 할 줄 모르는  외국인 남자와 전혀 정신적인 유대를 이루지 못하는데다가  ‘그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자신의 사랑을 '외국인을 사랑하는 특권'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감수한다. 둘은 전혀 다르지만, 욕망이라는 교집합으로 둘의 사랑을 견고하게 다져나간다.  모든 신경레이다가 남자에게로 향해 있는 동안 여자는 글쓰기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일기처럼 써 나가고 자신이 생각하는 남자에 대한 외연들을 '상상과 욕망'이라는 것으로 대체해 나간다. A는  대중가요가 전해주는 사랑의 의미들로 자신의 사랑을 미화시키지만, 때로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혼외정사를 다룬 영화들이나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비의적인 문학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비극을 예감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특한 것은 주인공 A가 자신이 겪었던 실제 연애담과 동일하게 내면의 성적인 욕망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은 그대로 일기처럼 적어간 글쓰기라는 점이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통증과 여성의 섹슈얼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쓰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거나, 여성으로서의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곤 하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또 한명의 여인.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A와 혼동하거나 비교하곤 하였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집착과 강박증은 두 여인이 매우 닮았지만  <슬픈 짐승>의 여인이 상상과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사랑, 즉 환상속의 사랑에 머물러 있지만  <단순한 열정>의 A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사랑이 주는 환상에 의존하지는 않는 독립적인 현대여성이라는 점이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p59-

 

 

《단순한 열정》은 A가 2년 동안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의 글쓰기가 한 권의 '이야기'로  남겨진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것도 여자의 글쓰기는 여자의 삶의 한 부분을 남겨둔 한 개인의 기록의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에 묘하게 끌린다. 내가 근 몇 년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과 삶의 의미로 남지만, 늘 남이 내 글을 읽으면서 판단되는 비판과 공개에 대한 고통에 자유롭지 못하기에 A가 자신의 단순한 열정을 기록하며 쓰는 고통의 절반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녀가 자신의 섹슈얼한 욕망에 너무도 솔직했고 자신의 사랑에 너무 솔직했고, 자신의 글쓰기에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함, 그것은 정말  글쓰는 이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때문에 나는 늘 열정 한 가운데에서 들끓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서,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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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오래 전에 문학동네에서 2001년에 나온 판으로 읽었어요.
아주 작고 얇은 책이었지만 내내 절박함으로 가득한 그 열정(드림님의 말씀처럼 결핍,의 다른 이름)
으로 써 내려간 뜨겁고도 강렬한 느낌이 아직도 선연하네요.
작가의 이런 열정은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열정인 듯 합니다. 그래서 더욱 불에 덴 듯 뜨겁고 아프지만.
이 <단순한 열정>을 읽고 <집착>도 이어 읽은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 책의 핵심은, 인용해주신 -p59-에 다 들어 있지요~*^^*

드림모노로그 2013-10-09 11:32   좋아요 0 | URL
필립 밸랭이라는 청년이 아니 에르노와의 5년간의 사랑을 <포옹>이라는 소설로 써서
<포옹><단순한 열정><집착> 이렇게 사랑의 연장선이 되더라구요 ㅎㅎ
전 이 책이 단순한 여자의 욕망에 대한 열정보다는,
글에 대한 이 여자의 열정으로 읽혀지더라구요 ~
사람마다 글에서 자신의 욕망을 읽게 되잖아요 ㅎㅎ
그건 저의 또다른 욕망이나 마찬가지겠죠 ^^ ~
아 그 59쪽을 읽는 순간, 마음에 찌르르 전기가 왔어요 *^^* ~
제가 남겨놓고자 하는 열망과 남이 읽을까봐 두려운 고통. ~~~~~
멋지죠 ~ ^^작가의 통찰이 빛나는 순간을 같이 공유하는 기분이었거든요 ㅎㅎㅎ
나무늘보님이 그 부분을 콕 짚어주셔셔 감동 먹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