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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서뿐 -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3년 6월
평점 :
이익을 향해 질주하는 호리지성(好利之性), 명예로운 삶을 추구하는 호명지심(好名之心). 옛 선인의 삶은 호명지심에 가깝지만, 현대인의 삶은 호리지성에 가깝다는 것은,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최고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샌델이 ‘정의는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러 개의 가치 중 하나가 아니다. 정의는 모든 사회 덕목 가운데 최상의 것, 다른 것보다 앞서고, 반드시 부딪쳐야 할 가치다.라고 하였듯이 우리의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정의는 절대,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시대를 불문하고 추구해야 할 진리이다. 여기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전혀 다르면서도 같은 진리가 있다. 철학의 본질인 진리에 이르는 길은 같다는 점이다. 서양의 철학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였다고 한다면 동양의 철학은 정의를 추구하는 그 길목, 자신을 다스리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수단은 오로지 책이었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는 철학에 답이 있다고 우회적으로 말하였지만 현대에 왜 책을 읽는가? 하는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나는 항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책이 영혼의 밥이라든지, 책을 읽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더지 그런 상투적인 대답말고 그 이면에 숨겨진 , 책의 의미에 더 갈증을 느끼곤 하였다. 나는 몇 년을 책에 빠져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었다. 책이 시간처럼 파도처럼 내 삶을 채워가는 과정속에서도 책은 나에게 항상 물음표로 남아있었다. 나는 왜 책을 읽을까,라는 물음은 좀처럼 떠나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았다.
허균은[한정록]에서 ‘책은 한때라도 놓아 버리면 그만큼 덕성이 풀어진다, 책을 읽으면 이 마음이 늘 있게 되고, 책을 읽지 않으면 마침내 의리를 보더라도 보이지 않게 된다.’ 라고 말한다. 책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독서를 통해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실제의 삶에서 이를 체득하는 것도 ’마음‘에 있음이다. 이 '마음'의 중요성은 책에 실려있는 허균, 안정복, 이익, 양응수,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등 과거 문인이자 천재였던 이들에게서 공통분모가 된다.
[황덕일 형제에게] 안정복이 보낸 편지에서도 ' 괴롭게 공부하고 미친 듯이 몰두해서숨 쉬고 밥 먹듯이 해서 공부가 일상이 되어야 하네. 그렇게 쌓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속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올 걸세. 그때까지 가야 하네. 중단 없이 해야 하네. 옛 선인들도 다 이렇게 공부해서 기쁜 소식을 얻은 분들일세. 라는 말에서도
홍대용의 독서법 '이의역지 (以意逆志) ‘내 뜻으로 지은이의 뜻을 거슬러 구한다.’ .
자신의 뜻으로 옛 성인들의 뜻을 거슬러 가다보면 ‘너와 내가 만나고 지금과 옛날이 하나가 되어야 독서의 위력은 막강해진다.’ -[여매헌서]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독서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키는 마술이 곧 공부요 독서다.’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 독서도 그와 다르지 않다. 독서는 그 자체로 함목적적이다. 읽어서 마음이 기쁘고, 생각이 변하며, 삶이 바뀐다. 이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는가? .
‘ 세상 모든 사물이 다 책이라네. 손짓 발짓 하나하나가 다 공부요 독서인 셈이지. 헛된 지식 몇 조각 들고 나부대고 으스대면 못쓰네.’
9人의 독서에 방점은 홍석주가 [학강산필]에 쓴 ‘덮어놓고 책만 읽으라기보다는 바른 마음자리를 심어주는 것이 먼저다.책은 지금 안 읽어도 다음에 읽으면 된다. 마음은 한 번 흐트러지면 추스르기가 어렵다. 마음 밭을 황폐하게 하는 원인은 소인을 가까이 하는 데 원인이 있다.’ 이다.
‘책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또 마땅히 마음자리를 살피는 것이 먼저이다.’
독서는 중요하다. 사회에는 인문학 전도사도 있고 독서 지도사, 독서 전문가등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독서가들이 정말 많다. 시중에도 그 독서의 중요성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정작 독서인구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호리지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으면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독서는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삶을 풍요로워지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으라 하였고 이는 홍대용이 독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닮아 있다. 인문학 전도사 <리딩으로 리드하라> 의 저자 이지성은 책을 미친 듯이 읽다보면 언젠가는 책에서 빛이 나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하였다. 이는 연암 박지원이 책에서 본 그 빛나는 순간, 독서의 즐거움과 닮아 있다. 정의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이듯 책이 전해주는 울림은 옛 선인들과 현대인들이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다. 그 사유의 공간에서 우리는 함께 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마치 옛 선인들과 한 자리에서 ‘너와 내가 만나고 지금과 옛날이 하나가 될 수 있는 ' 공간으로서의 초대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책‘을 통해서이다. 나는 우습게도 일본의 비평가이기도 한 사사키 아타루가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에서 책이 있는 한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때 , 지나치게 자의적이며 비약적이라며 썩소를 날렸던 그 말을 《오직 독서뿐》의 옛 성인들에게서 느끼고 있다. 과거에서 날라 온 한 줄기 희망의 빛줄기로 인해 나는 앞으로도 쭈욱, 책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