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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 국내 최초의 완벽 주석서
홍자성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7월
평점 :
동양고전은 하나의 유기체이다. 유가·도가·불가의 정신이 서로 다른 듯하지만 그 안의 담긴 삶의 철학들은 서로 긴요하게 연결되어 있다. 유기체는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낳을 수 있고 , 전체의 변화가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데 채근담(菜根譚)은 이 삼교의 정수를 하나로 녹여내어 하나의 유기체로서 21세기 현재에도 동양 최고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양의 탈무드와 비견되어지곤 하는 채근담은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읽고는 근래에는 처음 읽는다. 과거 채근담을 한 꼭지씩 읽은 기억은 있지만 이렇게 완벽 주석서를 다시 읽게 되니 감회가 매우 새롭다. 고전이 딱 자신의 그릇만큼 담을 수 있고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지 채근담이 이렇게 삶의 자양분이 될 만한 알곡들이 넘쳐나는지를 다시금 깨닫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 책 역자의 ‘해설’ 부분 때문에 채근담에 심겨진 알곡들이 더욱 그 빛을 발하는지 모르겠다. 저자 신동준은 고전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로서 최근 고전에 관한 책들을 폭풍집필중이다. 저자의 고전해석은 명료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글들로 고전에서 끌어올린 삶의 지혜를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비하여 설명하는 탁견이 빛난다.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명나라 말기에 문인 홍자성(홍응명(洪應明),환초도인(還初道人))이 저작한 책이다. 채근담을 삼교의 정수라 하는 이유는 피상적으로 볼 때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유가적 질서로 보이지만 그 뜻의 심오함은 몸은 세속에 두되 마음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 物我一體적 삶에 가깝기도 하다. 따라서, 유가 , 불가, 도가의 사상을 융합하여 삶의 교훈을 가르쳐주는 고전의 정수이자 참된 지식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한 번 읽으면 가슴이 확 트이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두 번 읽으면 삶과 속세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 세 번 읽으면 생사의 경계를 뛰어 넘어 천지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게 된다.”
제1편 전집 前集
제1부 파탈擺脫 - 관행에서 벗어나라 /제2부 방원方圓 - 방정과 원만을 섞어라
제3부 득실得失 - 명리를 탐하지 말라 /제4부 화복禍福 - 일희일비하지 말라
제5부 중용中庸 - 절도를 지켜라 /제6부 염량炎凉 - 세상인심을 읽어라
제7부 청탁淸濁 - 지나치게 가리지 말라/제8부 공사公私 - 공과 사를 구분하라
제9부 고락苦樂 -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
제2편 후집 後集
제10부 지족知足 - 분수를 즐겨라/제11부 자적自適 - 스스로 유유자적하라
제12부 물아物我 - 천지자연과 같이하라 /제13부 진공眞空 - 집착을 버려라
이 책의 체제는 명대에 출간된 명각본明刻本을 저본으로 삼아 전집과 후집으로 구성된 원문체제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전집과 후집의 총 359장에 대한 제목을 4자성어로 정리한 뒤 25장을 한 묶음으로하여 모두 14부로 나눈 것이 이 책의 구성이다. 제목만 보고도 해당 장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한 역자의 배려가 돋보인다. 또한 바로 그 점이 국내 최초의 완벽 주석서라 불릴 수 있는 본서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고전에 해박한 저자의 [해석] 부분은 채근담에 담겨져 있는 심오한 철학의 맛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천연조미료로 논어와 학이, 사기, 주역, 중용 , 장자 등의 중국고전을 넘나들며 채근담의 웅숭깊은 인생의 참뜻과 지혜로운 삶의 자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해주고 있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k/a/kamja12222/8974187361_1.jpg)
삶을 누가 먼저 깨달을까
나는 평소 그것을 알았지
초당의 봄잠은 충분한데
창밖의 해는 너무 더디지
책 제목의 ‘채근採根’은 송宋나라의 학자 왕신민汪信民이 “인상능교채근즉백사가성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이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의 내용은 경구적警句的인 단문들이지만 저자의 해설로 인하여 채근담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저자는 채근담을 한 번 읽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는 심사深思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온전히 자기 자신의 처세 이치로 만들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세상이 디지털시대에 진입하여 삶의 모든 근간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지닌 아날로그적 감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과학지상주의와 진화론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사람보다 물질의 가치가 더 높게 측정되는 작금의 시대에 채근담이 전해주는 담백하고 소박한 삶의 처세가 더욱 둔중한 울림으로 남는 이유도 바로 삶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지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가 빠르게 디지털시대로 변화하고 있지만 사람이 곧 진리임은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두고두고 아껴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