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평점 :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이미 있던 것은 과거에 있어 왔던 것이며 지금의 새것은 다시 과거의 것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소비의 시대’라고 한다. 소비를 해야만 돌아가는 사회라는 것은 소비를 하지 않으면 삶의 가치가 없다는 삶의 극단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소비라는 돋보기로 세상을 본다면 우리의 모든 삶이 소비를 중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은 우리 사회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market society)로 옮겨갔다고 진단하고 있듯이, 시장사회는 소비가 삶의 중심이자, 목적인 셈이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k/a/kamja12222/38274_45507_3827.jpg)
며칠 전 아파트 앞 쓰레기 더미에 아무 흠집이 없는 탁자가 버려졌다. 우연히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관리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한 후, 집으로 가져왔다. 아무 흠도 없고 색상도 이쁘고 디자인도 훌륭한 이 탁자를 왜 버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던 터에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 탁자의 주인공을 그려보고 그네들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하며 저자가 그리는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을 따라가 보기도 하였다.
괴테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의 황금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던 것처럼 대부분의 학자들이 경험을 배제한 자신의 지식에만 갇혀 실천과 경험이라는 생명의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의 저자는 문화범죄학이라는 자신의 학문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자신의 오랜 고향 텍사수 주 포트워스로 향하여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가 되었다. 장장 8개월 동안 쓰레기 수집인으로 살았던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낸 기록이자, 소비문화와 나날이 커져가는 빈부 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낭비’에 관한 사회문화적 현실을 마주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k/a/kamja12222/SSI_20130621170146_V.jpg)
저자는 쓰레기를 주우면서 세상이 ‘소비지상주의’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넘쳐나는 ‘멀쩡한 쓰레기’들과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들로 인해 소비주의의 확산의 두려움을 깨달아가는 일상의 이야기와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소비주의의 확산’으로 특정한 자원 고갈을 포함한 환경오염과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폐기물의 급격한 증가를 동시에 가져온다고 한다. 오래 전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의 아름다운 새 알바트로스가 무더기로 죽어 산을 이루게 된 이유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먹고 집단떼죽음을 당한 것을 보고는 매우 경악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렇게 ‘소비와 낭비’ 는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파괴의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낭비와 쓰레기 수집을 대하는 범죄학자의 역할이 단지 그 법적 ·문화적 모호함에 대한 설명과 결론을 이끌어내고 문화범죄학의 새로운 가설을 입증하고 접근하여 결론적으로는 총체적인 문화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k/a/kamja12222/temp/20130329151124442455.jpg)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더 이상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물건이 있는가? 그럼 예술을 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물질세계의 의미는 이렇게 다시 한 번 변화를 겪는다. 이번에는 버려진 물건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가능성을 갖는 위대한 변화다.-p273
최근 캠핑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서 캠핑을 갈때마다 좋은 벗들을 만나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휴가에서 만난 이웃은 20년차 캠핑경력의 달인들로 이들과 친해지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소박할 수 있는 캠핑문화이지만 소비와 낭비의 문화는 캠핑문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일수록 소비와 낭비가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싼 텐트와 비싼 캠핑도구들, 듣보잡의 고가의 캠핑용품들이 즐비한 가운데 캠핑경력의 달인들의 소품들은 비교적 소박한 편이었다. 다 쓴 햇반그릇이 밥그릇이고 퐁퐁을 담아온 통은 다 쓴 화장품 통이었고 음식들은 집에서 한 번 먹고 남긴 음식들을 모두 냉동해서 팩으로 담아 온 것들이다. 이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삼시세끼를 꼬박 푸짐하게 대접받았다. 나는 그 순간이 저자가 길거리 세계와 마주하며 느낀 오늘날의 소비문화의 통찰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소비와는 다른 세계, 소비에 물들지 않은 생활습관이 얼마나 삶을 자유롭게 하는가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니었을까. 지나친 소비문화에 대한 경계와 길거리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삶을 관통하는 아름다움들이 저자의 눈을 통해 내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실 해아래 새것이 어디 있겠는가. 새것은 언제나 헤지게 마련이고 지금의 새로운 것은 반드시 과거가 될 것임을.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써 소유하게 되는 물건의 획득을 통해 소비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고 마는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집어등을 향해 달려드는 오징어떼는 아닌지 반성과 깨달음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선물해주고 있는 책이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 삶,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자연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바로 선禪에 이르는 삶이다. 이것이 바로 소비문화의 근본을 꺾을 수 있는 존재론적 힘이다.